화순저널2025.08.06.
화순살이가 4반세기 넘어 27년이 되어갑니다. 1999년 37세 때 낯선 화순으로 이사 왔습니다.
IMF 쓰나미였을까요, 나의 부모님이 광주에서 다 털린(!) 후 우리 가정이 부랴부랴 살 곳을 찾아 나선 곳이 화순읍내 서태리 마을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가정에겐 화순은 나주, 담양보다 훨씬 낯선 곳이었죠. 그런데도 화순이 우리 가정의 피난처가 된 것은 다만 아버지와 나의 고향 장흥을 바라보는 지역이라는 점이었고, 울타리 안 500평 너른 들판의 집을 월세 10만원에 내놓은 사랑방신문의 부동산정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가정의 처지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충격으로 우울증에 빠질 듯했던 어머니는 5년여 버려둔 너른 마당의 돌들을 캐며 텃밭을 일구면서 당신을 치료하셨고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회고하십니다. 버려둔 땅에 이런저런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서 집주인은 놀라고 기뻐하며 1년 후 월세를 6만원으로 할인해주었죠. 다시 우리 집을 갖기까지 그곳에서 6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화순은 부모님에겐 60이후 노년의 삶을 의지하는 안식처가 되었고, 나의 인생사에서도 어느덧 가장 오랜 삶의 둥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신비로운 화순과의 인연입니다.
올해 2월 광주의 중등교사로 재직했던 36년의 삶을 마쳤습니다. 아침이면 무등산 만연산을 넘나들어 파고드는 햇살과 저녁이면 도덕산, 종괘산을 끌어안고 찬란히 퍼지는 황혼을 마주하기까지 화순과 즐겁게 대면하는 일상입니다. 이제는 광주가 간식이고 화순이 주식입니다.
화순이 지명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통일신라의 여미현(汝湄縣)을 화순현(和順縣)으로 개칭한 고려초 940년이더군요. 태조 23년 후삼국 통일 직후 각 지방의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지명을 개칭하는 역사가 이루어진 듯합니다. 이때 지명들은 대부분 중국식 한자용어로서 누군가 상당히 고민하며 전국의 지명을 창조한 듯합니다. 그런데 여미현은 왜 화순일까요?
도덕윤리교사에게 和順은 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가 순자(荀子)가 매우 강조했던 용어입니다.
순자의 <악론(樂論)>에는 무질서한 자연 상태 인간이 예(禮;질서와 법도)를 자발적으로 깨닫고 길러가는 변화를 합창의 화음이 연출되는 것과 같은 즐겁고 감동적인 과정으로 묘사합니다. 결국 순자는 예의 이상을 인간이 천지와 조화하여 순해지는 화순의 경지라고 설명합니다.
순자에게 정치란 합창단을 지휘하듯 화하여 순해지는 놀랍고 감동적인 체험의 연출입니다. 능주와 화순,동복의 예민한 갈등 때문에 서로 싸우지 말고 조화하라는 당부로 화순을 언급했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것은 훨씬 훗날의 해석인 듯합니다.
국어사전에는 '화순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온화하고 양순하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많이 사용되는 편은 아니지요. 하지만 화순에서부터 ‘화순하다’는 말이 많이 쓰였으면 합니다. 카페이름으로만 남을 일이 아니지요. 화순의 정치로 화순해지는 화순한 고을, 화순이었으면 좋겠네요.
광주를 떠나 화순살이 27년, 나의 삶은 우여곡절의 사연을 품고도 더욱 화순해지고 있답니다. 우리 모두 화순해진 삶을 고백하고 조명하며 화순의 삶을 향해 불을 밝혔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