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인 교사들 관계와 학교공동체

사랑과 존중이 학교의 정의를 살린다

by 원시의 사유

교사들의 직장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는 대체로 피상적이기 일수이다.

그리고 학교생활은 교사들의 삶을 전인격적으로 노출시킨다.

그 가운데서 교사들은 각자 자신의 코드로, 자신의 필요로, 자신의 감각에 갇혀 동료교사를 재단하고 규정내린다.


하지만 교직생활에서 만능인 교사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업무에서, 동료교사들과의 만남에서, 교육발전을 위한 권력과 맞섬에서, 교육의 공적 가치를 향한 지역사회와 관계에서, 수업에서, 기록에서, 학생-학부모와의 만남에서 완벽함이란 어불성설이지만, 두루 능숙하기도 매우 힘든 것이 당연스럽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교사들의 고군분투를, 각자의 소중한 가치와 그것을 위해 매진하는 각자의 편향적 실천들을 만난다.

아쉽지만 아름답다. 아쉬움은 나의 역할에 대한 각성이요, 아름다움은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발견하는 뿌듯함이요, 내가 도움받는 것들에 대한 감사이다.


교사는 교사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서로를 아름답게 가꾸는 미력한 힘이어야 한다. 내 맘에 안드는 교사일망정, 내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악덕을 지닌 교사일망정 내가 사랑하고 모시는 그 어떤 학생에게는 나보다 더 아름다운 교사요, 나보다 더 영향력을 미치는 교사이다. 부부관계가 힘들더라도 내 자녀에게 소중한 엄마이자, 아빠이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학생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때문에도 우리는 동료교사에게 배울 마음의 그릇을 키워간다.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닥이 되고, 굳어져 경직된 고체가 되었다면 나의 동료교사를 향한 마음 또한 경직되고 오로지 편향적 심성으로 경사되어 그를 바라보기 쉬어진다.

학교는 깨어져서는 안될 공동체이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민중이든, 친러시아 민중이든 아프고 갈등할지언정 서로를 학살하고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학교 또한 사랑과 존중의 힘이 함께 받쳐져야 정의의 힘도 살아난다. (사랑과 존중의 힘을 포기한 채로 정의만 살리려는 어설픈 진보의 상처를 염려한다)


3월1일, 창밖으로 오랜만에 안개를 본다. 새학기가 시작하나보다. 나는 여직 병휴직으로 남아 있지만 고군분투할 현장의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