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강변 호텔>이 개봉했다. 예고편에서 김민희가 하얀색 통바지를 입었길래 비슷한 걸 사 입고서 오오 극장엘 갔다. 영화에 내가 입은 흰 바지가 나올 때마다 기뻤지만 그의 것은 맨질한 면이고 내 것은 코튼 면이었다.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홍상수 영화를 볼 때 나는 어떤 지점을 기다린다. 맘에 드는 대사를 맞이하려는 것이다. 그 지점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작은 행복들을 즐긴다. 이를 테면 특유의 클로즈업 샷이라든지 흑백 영화의 공간에 빛이 내리쬐는 장면에서 색이 느껴지는 기분이라든지 서울 사투리나 문어체인 인물들의 말투가 있다.
특별히 꾸준하게 떠올리는 영화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풀잎들>이다. 인물들이 대화 나누던 장소는 나의 단골 커피숍이나 혼자 공상하는 장소가 되었고, 지금도 자주 영화 속 인물들을 따라 하며 내가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도 나에게 이만할 수 있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강변 호텔>은 전작들에 비하여 작게 인상에 남았다. 해오던 영화와 같았다. 실망은 안 했다. 첫 문단에 언급하였던 어떤 지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시인 고영환은 강변의 호텔에 머물던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 아들을 불렀다. 첫째 이름은 경수, 둘째 이름은 병수다. 고영환은 아들 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말해준다. 경수는 서울 경자에 빼어날 수자인데 서울이 높은 곳에 있으니 그리 지었다고 했다.
병수 이름 풀이는 경수보다 더 할 말이 많고 주목되었다. 나란히 병 자와 빼어날 수 자 중 나란히 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댔다. 하나는 형제인 경수와 둘이 나란히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뜻은 또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늘을 느끼는 마음과 길을 걷는 마음을 나란히 하라는 데 있다. 여기서 나는 집중하였다. 하늘을 느끼는 마음이란 우리 인간은 원래 하늘에 속한 존재, 하늘 그 자체여서 하늘이 함께하고 있음을 늘 아는 것이다. 길을 걷는 마음이란 인간은 하늘에 속하여도 땅을 걸을 수 있어서, 하나의 마음만 알지 말고 다른 길을 걷는 여유와 여지를 가지는 것이다. 두 마음을 나란히 해야 하는 이유는 마음 한 개가 너무 세지면 위험하므로 다른 마음과 함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라 한다.
저 부분이 나는 괜찮았다. 들어보지 못한 타인의 생각이었다. 나란히 병 자의 병수도 좋았나부다. 감동받은 눈으로 종이에 좀 적겠다고 한다. 이게 좀 웃겼다. 남의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듯 크게 감탄하는 사람이 바로 이름 주인공이지 않은가.
시인 고영환은 시 제목처럼 자식들의 이름을 지었다. 애들이 어릴 때 집을 나가서 이름에 관한 이야기 한번 들려주지 않다가, 애들이 스스로 이름을 정할 때까지 함께 있어주지도 기다려주지도 않고서, 십수 년 흐른 뒤에야 강변의 호텔로 불러 자기의 신념과 이상이 담긴 이름 풀이를 멋들어지게 늘어놓는 모양이란! 경수와 병수는 오랫동안 고영환을 못 만났다. 어머니는 그가 천하의 괴물이며 남편으로서 좋았던 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누누이 욕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만나게 된 아버지 고영환을 존경하고 귀담아듣는 모습이 재밌었다. 집안에 소홀한 어떤 남자가 바라는 대로 설정된 자식들 같았다.
갑자기 죽을 것 같은 느낌. 그게 뭔지 궁금했다.
같은 호텔에 묵는 여자 둘한테 예쁘다고 찬미하며 무릎 꿇고 시 하나 야심차게 낭독한 뒤 소주 한 잔 받아 마시곤 죽어도 여한 없다는 시인 고영환이 갑자기 죽을 느낌이 든다니까 같잖은 면이 있지만 궁금은 한 것이다.
조만간 강변의 호텔에 글을 쓰러 가기로 했다. 수필이 술술 나오면 꿈만 같겠다. 민희를 따랐지 고영환 때문에 가는 건 아니다. 겨울에 집을 짓는 기특한 까치를 창 밖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기대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눈 안 내리고 꽃잎 날리는 봄 중이지만. 그리하여 죽을 것 같지 않고 살아날 수도 있을 테다. 혹시 호텔에 바깥의 커피를 사들고 올 사람이 있다면 부를지 모른다. 전화를 기다려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