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 1990
2018년 4월 1일 그날, 아껴둔 <아비정전>을 보았다. 그리고 글을 썼다. 2019년 4월 1일 그날인 오늘, 일 년 전 글을 꺼내 읽었다. 마시는 커피 잔으로 몹시 숨고 싶었다. 문장은 서툴고 표현은 느끼했다. 책을 멀리 하고서 누구를 그만큼 사랑한다고 티 내선 안 되었다. 사랑함을 처음부터 단정하게 적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만 벅차 줄줄 흐르는 그때의 글이 귀여우면서 민망하였다.
나는 국영을 진실로 애정 한다. 오늘은 새로 마음을 쏟아부어야 하는 연재 작업에 몰두했다. 나의 다양한 사랑이 쓰인다고 공표했기 때문에 국영의 이야기는 필히 실릴 것이다. 새로운 영화의 리뷰도 좋지만 일 년 전 그날 적은 글을 고치고 각색하기로 했다. 부끄럽다고 한 옛 글은 안 지운다. 사랑의 흔적이므로.
다정했던 그가 떠난 지 16년이 흘렀다. 2017년 겨울까지는 장국영을 알지 못했다. 11월 어느 심심한 밤, 유명하다던 <영웅본색> 시리즈를 감상했다. 모르는 젊은 배우의 눈빛은 특별하였다. 사랑하라고 만들어진 눈 같았다. 그 밤 이후 그가 등장하는 영화들만 보는 시기가 있었다. 2018년 인스타그램에는 홍콩 영화에 빠졌음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장국영과 관련된 책과 영화 포스터 등을 택배로 보내주었던 이도 있었고, 진행하던 영화방에서 장국영의 영화를 함께 보며 인연 맺은 사람들도 생겼다. 조용히 좋아하기에 국영은 너무 컸다.
우리 둘(임청하와 장국영)은 1993년 <동사서독>에 출연하게 되었다. 맨 처음 촬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가 내게 요즘 잘 지내냐고 물어왔다. 난 말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커다란 눈물만 흘렸다. 그러자 몇 초 간의 침묵이 이어졌고 그는 내 어깨에 기대며 말하기를 "당신에게 잘해줄 수 있소"라고 했다. 이후 우린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극장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극장에 도착해보니 그가 극장 건물의 벽에 기대 환히 웃어주었는데 그 미소가 꼭 천사 같았다. 내가 핸섬하다고 하니 그가 방금 머리를 깎고 왔노라며 수줍게 말하였다. (후략)
_임청하 자서전 《창문 안 창문 밖》 中
그의 이야기들을 많이 뒤졌었다. 국영을 알게 된 기쁨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를 잃는 슬픔도 거쳐야 했다. 국영의 삶은 출연한 영화의 인물에 많이 녹아 있다. 배우 장국영과 인간 장국영을 떼어놓고 보기는 힘들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안아 드리고 싶었다. 국영이 살아 있을 때 함께 했던 팬들을 자주 생각했다. 적어도 16년이 넘는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비하여 빠르게 사랑하고 슬퍼하는 나의 모습이 조심스러웠다. 앞에서 ‘다정했던 그가 떠난 지 16년이 흘렀다.’라는 문장을 쓸 때도 신경이 쓰였다. '다정했던 그가'. 마치 장국영을 잘 아는 듯한 말투니까. 그 사람을 소중히 표현하고 싶은데 항상 잘 되진 않는다. 쉽게 동정하거나 신처럼 칭송하는 것도 경계한다. 나의 마음이 크다는 것을 저 달처럼 알아주길 바란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아비는 마음이 불안정했다. 쉽게 유혹하고 계산 없이 사랑을 시작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 떠나버렸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또 자기가 누구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그는 때때로 애인에게 제 멋대로 굴었다. 상처 받기 싫다는 이유로 상처도 주었다. 처음에는 아비가 미웠다. 그렇지만 발 없는 새가 땅을 딛지 못하는 일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치고 피곤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맺는 이기적인 관계를 이해해보려 애썼다. 울렁이는 바람 속에서나 잠드는 아비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면 좋을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였다.
아비가 위태로운 데는 이유가 있다. 친어머니는 어릴 때 떠났고 양어머니는 소년 시절부터 그를 외롭게 했다. 나중에 친어머니를 찾으러 필리핀으로 떠나지만 만남을 거절당한다.
난 고개를 안 돌렸다. 난 단지 그녀를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기회를 안 주니 나도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돌아서는 아비의 뒷모습은 눈물이 흐르는 슬픔보다 메마른 사막의 쓸쓸함에 가까웠다. 자존심이든 콧대든 세고 높은 그가 친엄마를 찾은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아비는 지쳤었다. 필리핀에서 결핍의 원인을 마주하고 쉬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발 없는 새가 일생에 딱 한번 시도한다던 휴식은 무산되었다.
죽기 직전 뭐가 보이는지 궁금했어.
난 눈뜨고 죽을 거야. 죽을 땐 뭐가 보고 싶을까?
발 없는 새가 태어날 때부터 바람 속을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 새는 이미 처음부터 죽어있었어.
난 사랑이 뭔지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아.
이미 때는 늦었지만...
아비와 국영은 닮은 구석이 있다. 장국영의 부모는 불화가 잦았고 10남매 중 막내인 그에게 애정을 주지 못했다. 그러한 유년기를 보낸 국영은 늘 외로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 장국영이 맡는 인물들은 대체로 그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장국영이 가진 슬픔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아비의 말은 영화 인물의 대사로만 생각하기 어렵다.
1960년 4월 16일 우린 1분간 같이 있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아비가 수리진(장만옥)에게 건넨 대사는 우리가 국영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본인을 발 없는 새에 빗댄 아비는 처음부터 새가 죽어있었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를 울지 않고 찾고 싶다.
이 글에서 유난히 '장국영', ‘국영’을 주어로 많이 적은 이유는 그가 생전에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일 년 전 나는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쓰며 시야가 흐려졌다고 적었다. 오늘도 그렇다. 장난이 아니다.
장국영을 알기 전엔 아무 날도 아니었던 4월 1일.
내년에는 홍콩 땅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 국영. 난 당신을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