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라는 말부터 배운다.
말은 감정보다 먼저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이 된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나는 점점 말을 걸러 듣고, 어떤 말을 할지 계산하게 된다.
어느 순간, 말보다 침묵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된다.
'전략적 침묵'이라는 말이 있다.
침묵은 자기 보존의 방식(Espin, 1993)이자, 주체적인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 침묵 속에는 수많은 아우성이 담겨 있다.
엄마이자 여성 연구자로 살아가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전략적 침묵을 요구했다.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순간, 밖으로 내쳐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늘 곁에 있었다.
내 침묵 속 아우성은 말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침묵은 종종 ‘이긴 자의 승리’로 오해된다.
그 순간, 나의 아우성은 구조에 눌리고,
말할 수 없던 나의 상황은 이해받을 수 없게 된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좋은 여성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여서 마음속 모순된 감정을 조금씩 빼낼 수 있었다.
팽창해서 터지지 않도록, 김을 천천히 빼내듯이.
그리고 집에서 종알종알 나에게 말을 거는 나의 딸을 보며,
내게 마음을 터놓는 연구참여자들을 만나며,
나는 전략적 침묵과 행동이 함께하는 ‘조용한 혁명’을 꿈꾸게 되었다.
말하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말해도 되는 사람’으로 다시 서기 위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참고문헌
Espin,O.(1993).Giving voice to silence: The psychologist as witness. American Psychologist, 48, 408-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