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비판인종이론
‘한국은 다문화사회다’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많은 이주민들이 가족결합, 학업, 취업, 혹은 모국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다.
성인으로 입국하는 경우도 있고, 미성년자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은 한국에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주배경 청소년
‘이주배경 청소년’은 위와 같은 다양한 이주 경로를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배경은 워낙 다양해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이중언어’이다.
나 역시 언어를 배워왔다. 중학생 때 영어는 의무 교육의 일부였고, 대학에서는 내가 선택한 전공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최근에는 필요에 따라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이주배경 청소년들에게 언어 학습은 ‘선택’일까, 아니면 ‘의무’일까.
많은 교육현장에서 이중언어는 이주배경 청소년에게 ‘기회’로 제시된다.
모국어(또는 부모의 언어)를 유지하거나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가족과의 원활한 소통, 정체성 유지, 그리고 장래 진로에 유리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은 너무 ‘좋은 말’이라, 오히려 그 안에 숨어 있는 압박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좋은 것'이기에 거부하기 어려운
이중언어는 ‘유용함’이라는 이유로 이주배경 청소년을 특정 방식으로 인종화한다.
이들은 이중언어 능력을 지닌 ‘다문화 학생’으로 기대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망과 결핍의 대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 부모, 특히 한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결혼이주여성은 ‘아이에게 이중언어를 잘 가르쳐야 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고정된다. 아이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는 엄마는, 어느새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어는 가능성이지만, 기준이 되는 순간 억압이 된다
언어는 자율성을 위한 수단이자 가능성이지만, 그 자체가 기준이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감시와 규율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중언어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이 교육은 미묘한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하며, 거부하거나 중단할 권리는 좀처럼 말해지지 않는다.
이중언어를 하지 않을 자유
이중언어를 하지 않을 자유.
이중언어를 가르치지 않을 자유.
어떤 이들에게는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을 수 있다.
어떤 엄마는 아이와 한국어로만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청소년은 모국어와 거리감을 느끼고 싶을 수도 있다.
이중언어를 추구하는 것도, 이중언어를 추구하지 않는 것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