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지 않는 일상 속 차이
“앗,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하이클래스에 어떤 책을 준비해서 오라고 하셨는데, 우리 집에는 그 책이 없지만, 나에게는 쿠팡 로켓배송, 심지어 다음날 새벽에 배송되는 앱이 깔려 있으니까! 준비물도 문제 없어!”
핸드폰을 켜고, 쿠팡 앱을 열어 필요한 준비물을 바로 구매한 뒤 잠이 들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일하지만,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나 강의 준비, 각종 업무로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디지털화된 일상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로켓배송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준비물을 잘 못 챙기는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Zoom 덕분에 회의도 집에서 할 수 있다. 아이가 학교에 잘 도착했는지 구글 패밀리링크로 확인할 수 있고, 종이로 출력하지 않아도 자료를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다.
나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 디지털 환경, 정말 모두에게 그렇게 작동하고 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실시하는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4)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의 디지털 정보격차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PC 보유율은 일반 국민과 유사한 수준(65.9%)
모바일 기기 보유율은 오히려 더 높다(98.7%)
가구 내 인터넷 이용률도 거의 동일하다(99.7%)
통계만 보면 “문제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과연 나처럼, 쿠팡 로켓배송의 편리함을 똑같이 누릴 수 있을까?
쿠팡 앱은 영어 외의 언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휴대폰 시스템 언어를 베트남어, 중국어로 설정해도 앱은 한국어로만 작동한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여성이 이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앱이 아닌 PC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접근하거나, 자녀나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건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시스템 설계 자체가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주여성들이 디지털 기기를 보유하고 있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지만, 동등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단순한 디지털 접근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는 지금 디지털 권력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누구를 기준으로 앱이 만들어졌는가?
누가 설계되고, 누가 배제되었는가?
이주여성들은 단순히 ‘기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설계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격차는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더 정교하고 조용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그 격차를 ‘없는 것처럼’ 통계로 덮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