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5세가 된 엄마는 기계를 다루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신다.
햄버거를 좋아하셔서 집 근처 맥도날드를 자주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키오스크 주문이 대세가 되면서 면대면 주문을 받는 가게로 발길을 옮기셨다. 나와 같이 있을 때만 상하이버거를 드실 수 있게 된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아직도 면대면 주문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이제는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한다"고 인식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압도적인 키오스크들이 우리를 그렇게 인식하게 만든다.
인식(recognition)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동시에 세상은 나를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인식의 과정은 공평하지 않다.
미국의 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사회 정의의 핵심은 단순한 분배를 넘어,
'누가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되는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 인식의 정치(혹은 인정의 정치)가 디지털 경험에서도 고스란히 작동하는 셈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침묵하게 되는 사람들은 단지 기술이 낯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용자로 상정되지 않았던 존재일 수도 있다.
디지털 기술은 보편적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를 상정한 기술인가’라는 묵시적 전제가 있다.
그리고 그 전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하고, 다른 길로 이동하게 만든다.
인식의 실패(misrecognition)를 경험한 엄마가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 듯이 말이다.
ICT와 디지털 환경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침묵시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만 기회를 열어주는, 은근하고도 무서운 인식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