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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Jan 29. 2018

바람과 동행

바람과 동행

고독하고 답답할 적에 맞아주는 벗이 있으니, 바람이다.

한 마디 말하지 않아도 천언만감(千言萬感)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벗은 바람뿐이다. 바람을 쐰다는 말은 바람과 동행한다는 의미이다. 바람과 함께 걸어 산책길에 나서면 마음이 은유 해진다. 심신을 파고들어 속속들이 안아주는 애인이 있으니, 바람이다. 머리카락에서부터 발끝가지 포근히 쓰다듬어주는 바람에게 자신과 영혼을 맡길 수 있으니 행복하다.

곁에 아무도 없이도 함께 나서는 동반자가 있으니, 바람이다. 천진한 어조로 주고받으며 무작정 걸어갈 수 있으니, 좋다.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지 않아도 서로 몸을 맡기며 영혼교감을 나누면서 걸을 수 있다. 

형언 할 수 없는 신비의 촉감을 지녔으니 바람이다. 눈동자 속으로, 코와 구속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신선한 기(氣)를 분사기(噴射機)로 뿌려주는 듯하다, 정신이 청명 해진다. 날아 갈 듯 상쾌해지고 얼굴엔 잔잔한 미소를 짓지 아니 할 수가 없다. 바람과 동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르르……” “쏴아……”머리카락을 날리며 휘파람을 불며 오는 소년처럼 포효하는 태풍처럼 변화무쌍한 얼굴을 지녔다. 바람과 함께 걸으면 하늘, 구름, 자연, 영원이 보인다. 

가질 수 없는 세계의 말과 얼굴이 떠오른다. 한 마디 말이 없어도 소통 할 수 있는 교감 언어를 나눌 수 있으니 바람이다. 신통(神通)이 아닐까, 나는 스쳐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존재란 일시적으로 흘러가는 운명체라는 걸 깨우쳐 준다. 순간이 소중함을 알려준다.

내 육체는 땅의 품에 맡겨질 것이지만, 영혼은 바람의 품에 맡겨지리라. 자유롭게 항상 순간으로 흘러가리라. 소유하고 머물고 영원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집착에 불과하다. 심신을 비워 내어야 바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하늘과 우주의 교신지(交信者)요, 자연의 철학자가 있으니 바람이다. 예지와 미래와 생명의 냄새가 난다. 

자연 질서와 생명의 순리를 알려주는 바람의 말, 순간에서 순간으로 흐르는 바람의 말을 어떻게 듣고 해석 할 수 있을까,

꽃눈과 잎눈을 틔우는 바람, …… 익은 밀과 보리의 향기를 넘치게 하는 바람, 과실과 곡식의 열매를 익게 하는 바람, 천지를 뒤덮을 듯 돌진하는 강한 바람, 만물을 얼어붙게 하고 떨게 만드는 바람, …… 생명을 키우고 성숙시키고 열매를 맺기 위한 전 과정을 가르쳐준다. 

대화자가 없어도 동행자가 없어도 언제나 함께 할 대상이 있으니. 바람이다. 내 고독의 위무자일 뿐만 아니라, 침묵과 영육까지 다 알고 있는 동반자에게 은혜와 감사를 느낀다. 함께 거닐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대상이 있어 좋다. 

바람을 닮고 싶으면 홀가분하고 가벼워져야 한다. 깃털처럼 부드러워져야 한다. 순간순간을 스쳐가는 삶을 배워야한다. 순간의 자각과 진실을 얻어 낼 줄 알아야한다. 머물지 말아야한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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