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찰라

by 김찬집

가슴의 상처

컴퓨터 모니터와 마주 앉은 지 거의 한 시간, 어미 품에서 빠져 나온 새끼를 엄마 품안으로 보내기 위해 주인의 애쓰는 꼴이다. 금세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뱅뱅 도는 생각, 얼 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의지의 움직이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의 경적을 깨운다.

모니터에서 눈을 들어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 한다. 핸드폰의 작은 화면의 나의 눈을 피로하게 하다. 핸드폰에 SNS를 키고 싶다. 이런 욕심을 잠재우기 위해 눈을 감는다. 한참을 기다려서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눈앞에 있는 모니터가 흐릿하다. 시선을 돌려 벽시계를 본다. 초침은 물론 분침도 시침도 흐릿해 몇 시 몇 분인 명확하지 않다. 갑자기 시력에 이상이 생겼나? 몇 번이나 눈을 깜박거리다가 다시 시계를 본다. 보이긴 하는데 이번에는 원형 벽시계가 손목시계만큼 작아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벽에 붙여 놓은 책장에 꽂힌 책들이 멀리 보인다.

의자만 돌리면서 필요한 책을 보던 그 자리가 아니다. 왜 이러는 거지? 흐려지고, 작아지고,.. 멀어지고, 이건 간단한 시력이 현기증이 아니 것만 같아서 마음의 무겁다. 문득 네 주위에서 나와 더불어 있던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멀리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는 실명(失明)되는 것 보다 내 몸의 점점 작아져서 개미만 한 전신으로 연명을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불안하다.

책상 옆에 둔 안경을 찾아 끼고 방에서 나온다. 발코니를 향한 유리문이 보인다. 한결 눈이 밝아진 느낌이다. 바루 방벽에 걸려 있는 TV가 보이고, 그 반대편에 놓인 쇼파 의자도 보인다.

그 의자와 책상 옆을 갈라놓은 탁자도 보인다. 타자위에 몇 권의 잡지와 최근 내가 읽다 만 몇 권의 책들이 보인다.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바로 오른 쪽에 놓인 TV리모컨이 손에 잡힌다. 아무 생각 없이 전원 단추를 누른다. 단번에 모니터가 밝아지더니 키 큰 피에로가 어린 아이들 앞에서 우스갯짓을 하면서 무어라 떠들고 있다. 배꼽을 잡고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그런데 이상하다. 떠들고 웃는 모습만 보일뿐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볼륨을 높여보아도 매 한 가지다. 이건 또 뭐지..... 후딱 전원을 꺼버렸다. 거실에 적막이 내린다.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대고 멍하니 앉아 있다. 귀안에서는 정적이 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기소리만 하던 것이 차츰 커지더니 몸통 안에서 공명을 하는 것인지 가슴까지 울린다. 가슴 덜림은 견디기 어려운 고문이다. 털어버려야지, 털어버려야지.....

앞에 액자에 시선이 간다. 노란 검은 색 태를 두른 액자에 늙은 매화가 몸을 뒤틀고 서 있다. 구부러진 부분에 박힌 검은 융이가 눈에 거슬린다. 줄기에 비해 형편없이 나약한 가지에 피어 있는 하얀 꽃들이 조화(弔花)처럼 보이다. 저걸 왜 걸어 놓았는지 한 심하다. 눈을 감아 버린다. 눈을 감으니 다시 이명(耳鳴)이 고개를 든다.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에서 창밖을 본다. 거실과 발코니 사이 유리창 믿다이에 다가가 밖을 내다본다. 앞집 정원에서 정원에 물주는 소리가 들인다. 이게 사람 냄새를 느끼는 유일한 이웃의 생명의 소리라고 애써 생각 해 본다.

발코니에 나가선다. 발코니와 바깥을 가로 막은 유리창이 또 앞을 막는다. 앞집에서 정원에 주는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순간 유리창을 밀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발이 간질간질하다.

기껏 용기를 내어 유리창을 연다. 제법 거센 바람이 쏴 달려들어 얼굴에 느낌을 준다. 눈을 감고 바람을 영접한다.

정신의 맑아 지는 것 같다. 물론 그러게 하자는 강인한 내 자신의 발버둥친 결과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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