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찬집

우리들의 情

고등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서 읽었는지 다른 잡지에서 읽었는지 분명치 않다. 필명이 오 헨리(o. Henry)라는 미국의 단편작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크리스마스는 가까워오는데 남편에게 선물할 경제적 여유는 없어서 궁리 끝에 자기의 머리를 잘라 팔아서 그 돈으로 남편에게 줄 선물을 샀다는 애틋한 부부사랑, 미국판 열녀(烈女) 이야기다.

오 헨리는 뉴욕에 사는 변두리 인생들의 삶을 주제로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섰다. 그 때 그 단편소설을 읽고 나는 어린 나이에 그 부인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공감도 애착도 느끼지 못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꼭 선물을 해야 하나? 잘 살지도 못하는 집에서 머리칼을 팔아, 먹을 것을 안사고 선물을 사다니……. “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내게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다. 아내가 오 헨리 소설의 주인공의 한 짓을 했다면 마음속으로 화를 내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섬나라 제주의 시골뜨기의 생각이다.

이런 경우 나는 “서양 사람들과 정서가 잘 맞지 않는다.” 는 말을 자주 한다. 무슨 말일까? 두 말 할 것 도 없이 어떤 경우를 당하여 냉철한 이성보다 감성을 중요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과 반면에 논리적 이지(理智)를 중요시하는 서양적 사고방식을 둘로 나누는 것이 보통 적 사고이다. 물론 이렇게 구분하는 데는 엄청난 무리가 따르지만........

사람이 죽었을 때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들의 우는 것을 보면 동서양의 차이가 가장 잘 나타난다. 서양 사람들은 좀처럼 잘 울지 않는다. 운다 해도 잠깐 흐느끼는 정도다. 우리는 워밍업 단계라고나 할까? 우리는 (대단히 실례 될지도 모르지만) 죽기 살기로 악을 버럭버럭 써가며 운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온몸이 리히터 규모 8.0 지진이나 온 것처럼 처절하고 화끈하게 운다. 이렇게 맹렬하게 한 바탕 울고 나면 소산(abreaction)효과 때문일까, 심리적 안정이 되 돌아오니 정신 건강상 여간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의 울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아마도 아무리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죽은 사람이 되 살아나기는커녕 “ 너 왔니” 눈 한번 깜박이지 않으니 울어봤자 에너지만 소모 할 뿐이라는 합리적인 생각에다가 또 옆에 있는 사람들의 고막을 생각해서 대단히 실례가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가 열심히 우는 것은 죽은 사람과 지난날의 정리(情理)를 회상하며 다시 볼 수 없다는 애석함을 쏟아놓는 것, 그러니 우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동안 죽은 사람과 일방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운 정도 있다. 정이란 즐거운 경험을 나누어 가지는 데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 두 사람이 오랜 세월동안 부닥뜨리며 사워도, 마치 우리가 모욕을 하지 않고 며칠 있으면 몸이 때가 끼는 것처럼 정이란 게 달라붙는다. 변호사 앞에서 부부가 서로 헤어지자는 합의 이혼에 도장을 찍고 나올 때 서양 부부보다는 한국 부인들의 눈물을 글썽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 사람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온 그 길고 질긴 인고(忍苦)의 세월, 원(怨)과 한(恨)과 사랑과 미움이 한 방울의 눈물로 압축된 것일까?

정조 때 조수삼이라는 사람이 쓴 <추재기이(秋齋記異)>를 보면 영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이정보와 한섬이라는 기생이야기가 나온다. 이 판사가 일찍이 어느 불상한 소녀 하나를 자기 집에 데려와서 먹여주며 가무(歌舞)를 가르쳤는데 뒷날 그 아니는 나라 안에 이름을 덜치는 한섬이라는 기생이 되었다. 이 정보가 죽자 한섬은 말을 달려 판사의 묘에 이르러 한 번 곡(哭)하고 술 한 잔 다르고 자기도 술 한 장 마시고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두 번째 곡하고 두 번째 잔을 마시고 또 노래를 불렀다. 이렇듯 하루 종일 술과 노래로 애도 한 뒤 자리를 떴다.

한섬이 보인 행동은 가객들의 전형적인 애도 의식이다. 위의 이야기는 한섬이라는 기생이 자기를 돌봐준 사람에게 마지막 의리를 지켰다는 이야기로 소개 되어 있다. 내 생각에는 이리보다 저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정이 많을까? 우리문화가 옛날부터 소도작(水滔作) 농경문화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일찍 바다를 끼고 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물건을 팔고사는 상업문화를 이룩한 서양문화의 요람 희랍과는 달리 우리는 한 곳에 혈연으로 맺은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끼리 화목과 합동이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사회유동이 적고, 평생 아침저녁과 같은 얼굴을 대하는데서 따뜻한 정감(情感)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약해 보이나 끈질긴 삶의 동력이 바로 이 정이다. 정이 많기 때문에 우리 살림살이는 말이 많다. 그래서일까? 바다 밖으로 나와 사는 사람들이의 외국인 교포들도 말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것도 정 때문이라고 말해도 정답 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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