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by 찬비

짧은 머리. 쾌활한 웃음. 삐쩍 마른 몸.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학교를 뛰어다니는 그 아이가 좋았다. 쉬는 시간마다 얼마나 많이 뛰어다니는지 머리에는 송골송골한 땀이 맺혀있었다. 그 아이의 성은 곽이었는데, 곽이란 성까지 더해져 그 아이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공부해?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

야 너 버디버디 아이디 뭐야. 등록 좀 하자.


반에서 공부를 잘하지 않았으면 존재감이 없었을 나에게 다가온 곽. 우린 그날 이후 친해졌다. 곽은 중학교 2년 동안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렸다. 3학년이 되자 기존 무리보다는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공부를 제법 잘했다. 곽은 공부 잘하는 애를 새친구로 두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곽은 나를 찾아와 장난도 치고, 수업 내용도 물어봤다. 나도 곽의 자리에 찾아가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 아이가 싫어할까 봐 먼저 가지는 못했다.


오늘 집에 같이 가자

그래. 근데 너 원래 다른 애랑 가지 않아?

아, 지우 이자영 다시 사귀잖아. 둘이 데이트한대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나에게 곽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곽을 따라갔다. 곽과 같이 복도를 거닐고 버스를 타자 스레 으스대는 마음이 들었다. 곽은 항상 브랜드 옷만 입었다. 래서 허름한 곽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놀라지 않은 척 표정을 가다듬어야 했다.


고파?

조금

떡볶이 먹을래?

그래. 나 떡볶이 좋아해


곽은 갑자기 마구 웃어댔다. 친구 커플이 알려준 떡볶이의 또 다른 의미가 생각났다고 했다. 곽은 둘 밖에 없는 집안에서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떡볶이는 피임하려고 생리 기간 중에 거 하는 거야. 그거 있잖아. 남자랑 여자랑. 그거.


어리둥절해하다가 점점 일그러지는 나의 표정을 보며 곽은 더 크게 웃었다.


씨발. 더러우면서 기발하지 않냐?


더럽고 기발하다는 건 표현을 말하는 건지, 행위를 말하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중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곽이 설명한 떡볶이도 불편했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떡볶이 재료는 있냐고 곽에게 물어봤다. 곽은 이곳저곳에서 재료들을 꺼내 왔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잘라둔 레시피를 보며 요리를 시작했다. 맛있었다. 내 표정에 곽은 자신이 요리 천재였나 보다며 신나 했다. 배불리 먹고 노곤한 상태로 곽의 침대에 누웠다. 온갖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곽은 갑자기 내 얼굴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얼굴이 븕어졌다.


아 씨발. 너 나 좋아하냐?


곽은 꼬리를 세우고 하악질 하는 고양이 같았다. 자인 내가 여자인 곽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나쁜짓을 들킨 것만 같았다. 얼떨떨 했다.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빨개졌다. 곽은 피곤하다며 그만 집에 가라고 했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혼자 '친구로서 좋아하지'라는 말을 되뇌었다.

다음 날부터 곽은 나를 피했다. 나 역시 다가오지 않는 곽을 애써 외면했다. 그날 일은 둘만의 비밀이 되었고,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곽을 향한 나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나에 대한 곽의 혐오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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