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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bin Park Aug 29. 2021

4. 꿈과 방

기대도 되는 것

가끔 문득 여행의 장면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아마 여행이 멈춘 요즘 더더욱 그 장면들이 또렷해지는 것 같다. 유독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머문 시간들의 장면들이 스치곤 하는데 이 도시는 대단히 화려하거나 세련된 도시는 아니었다. 정보도 부족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도착하자마자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마다 정말 상냥하고 친절해서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류블랴나에서 머문 에어비앤비 숙소는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선명했다. 거실과 큰 방, 그리고 널찍한 주방이 있었다. 체크인하던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라 우비를 탈탈 털어 입구에 마르게 두고, 각자의 침대로 점프하듯 뛰어 누웠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는 걸까?" 외쳐댔다. 50일간 동유럽 10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현실로 체감하고 있다 보니 하루하루 자전거를 타는 게 즐겁기보다는 고통과도 같았다. 우리 넷 모험의 딱 중간지가 슬로베니아이기도 했다. 류블랴나. 이름마저 낯선 도시였지만 이 도시만의 따스함에 짧게 머물렀지만 그간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기 시작했다. 야외 텐트 생활에서 벗어나 이렇게 수도에 도착하면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집이라는 안식처가 필요했고, 조금은 서로 분리된 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만의 여행 의식? 같은 게 있었는데 에어비앤비에 짐을 다 풀고, 밥을 먹고 낮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면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시를 누비는 것이었다. 나는 이 낮잠 시간에 꼭 꿈을 꿨다. 서울에 있을 때 꿈을 꿔본 적을 세어보라고 하면 손을 꼽을 정도로 적은데 말이다. 어떤 꿈을 꿨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확실한 건 꿈에선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확실히 좋은 꿈이었다. 


역시 두발로 걷기보다는 우리에겐 자전거가 더 익숙해서 짐을 다 풀고도 기어코 다시 자전거 위에 오른다. 이전보다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도시의 장면들을 마주한다. 때론 집이기도 하고, 주방이기도 하고, 서재이기도 하고, 옷방이기도 한 우리만의 '무거운 짐'들을 온전한 집에 두고, 정말 나 자신만을 위해 앞으로 페달을 구르는 것. 이보다 더 깃털 같은 가벼움이 있으랴. 나는 이 순간을 굉장히 즐거워했다. 이전에 내가 밟던 페달 속도가 아니라는 것에서 진짜 내 힘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달 한 번 더 구르기 어려웠던 약한 내 모습에서 집에 짐을 온전히 내려두고 자유로워질 수 있어서 말이다. 그렇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집, 그리고 방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게 설령 꿈이더라도, 깨지 않을 자신이 있다. 


훈호/찬빈/지호/승혁 - 슬로베니아 류블랴냐, 2015

 


슬로베니아 류블랴냐, 2015


여름밤에 우리 (Feat. Wave To Earth) - 전진희


오랜만에 너를 만나 얘길 나누니

어느새 다 커버린 모습이 보여

태양처럼 뜨거웠던 우리 마음은

무엇이 지치게 했나

어두운 밤 초록 나무 아래 그림자

한 손엔 차가운 맥주 한 캔 들고서

꿈결처럼 펼쳐질 내일을 그리며

마주 보고 웃던 너와 나

이 여름밤에 우리

흩어진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별빛 속을 달려보는 거야

영원 속에 언젠가 다 사라진 대도

오늘 밤은

이 여름밤에 우리

어디든 상관없이

너와 함께 걷는 지금이 영원인 거야

두려움은 마주친 눈빛 뒤로 안녕

안녕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멈춘 내 마음에 손을 내밀어

묻어뒀던 작은 욕심들

다시 꺼내봐도 괜찮은 걸까

이 여름밤에 우리

흩어진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별빛 속을 달려보는 거야

영원 속에 언젠가 다 사라진 대도

오늘 밤은

이 여름밤에 우리

어디든 상관없이

너와 함께 걷는 지금이 영원인 거야

두려움은 마주친 눈빛 뒤로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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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현지 pick: 꿈 (Dream)


*레이첼 pick: 방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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