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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bin Park Sep 03. 2021

5. 책상과 친구

머물다 가는 것들에 관하여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하는 행위 중 하나는 구글 포토 앱을 여는 것이다. 주제에 맞는 키워드를 '검색'해 나의 '경험''장면'으로 불러온다. 내가 구글 포토 클라우드를 가입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담은 모든 장면들이 펼쳐진다. 키워드 검색을 통한 '특정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질 때 나는 이유 모를 쾌감과 한 편의 두려움을 맞닥뜰이곤 한다. 잘 찾아줘서 고맙긴 한데, 이렇게 사람의 이름 (내가 저장한) 그리고 물건의 형태만 검색해도 알아봐 준다는 사실이 쾌감과 두려움을 단번에 느끼게 하는 원인이다. 어쨌든 가장 관련 있어 보일법한 장면들을 탐색해보다가 "아 이거다."라는 몇 장의 사진들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 안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 내보려고 한다. 


2016년 6월, 나는 처음으로 누나와 2박 3일간 제주도를 여행했다. 일본 유학을 떠났던 누나와 20대 이후의 추억이 없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누나와 조금 더 가깝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행 기간이 살짝 맞지 않아 누나가 도착하기 전, 나는 혼자 1박 2일을 제주시에 머물렀다. 제주에 홀로 처음 갔기 때문에 떨리기도 했고, 어디를 갈지 기대도 됐다. 공항과 가까운 제주시내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고 동문시장을 기점으로 구도심을 산책했다. 낮에는 국밥을 먹고 오후에는 느지막이 사라봉 쪽으로 가서 일찍이 뜨는 노을을 감상했다. 사라봉은 그 뒤로 나에게 제주 최애 스팟이 되었다. 


아라리오 , 2016년 6월 @chanbinpark


사라봉에 방문하기 전, 아라리오 동문 모텔에서 진행 중인 전시를 보러 갔었는데 여러 기획 중 무심코 놓인 책상과 의자, 그리고 조명과 책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꼭대기층의 구도심이 보이고 쓸쓸하게 놓인 이 조합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어느 방해되는 소음 없이. 


사라봉을 다녀와서는 천천히 제주동초등학교 쪽으로 걸었다. 사실 여행 중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동선 중 하나였다. 이미 해는 저물어 하늘은 깜깜해졌고 몇몇 가로등 불 덕분에 그나마 터벅터벅 걷기 좋은 분위기였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했다. 초등학교 작은 모래밭 벤치에 두 어른이 앉아 있었고, 한 명은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떨군 채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왜 우는지, 왜 이 두 사람이 여기에 앉아 있는지 당연히 이유는 모른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돼 보이는 두 중년의 남성이 한 명은 흐느껴 울고, 한 명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었다. 둘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그전에 둘은 왜 지금 이곳에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그 둘을 왜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오묘한 감정을 장면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훗날 나에게도 슬픔을 주체하지 못할 때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기를 바라면서,



홀로 제주, 2016년 6월 @chanbinpark




이유와 맥락은 모르겠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머물다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참 쓸쓸한 것이구나. 인생이란 여정도 결국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니까. 오늘 나는 누구를 만났고, 누구와 헤어졌을까. 




양희은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찬빈 pick: 책상 (Desk)


*예은 pick: 친구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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