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나와 차
돌아보면 카페에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했지만, 주로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었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살면서 가장 카페에 많이 갔던 시기는 제주도에서 지낼 때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다 보니, 동행을 하게 되는 날도 가끔 있었고,
같이 다녔던 사람들 대부분이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따라가곤 했다.
나에게 카페란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인데
나를 카페에 데려갔던 사람들은 가서 대화를 하기보단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러 갔던 것이라 지루한 시간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제주도에 지낼 때는 누군가와 다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 그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코로나 초창기여서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이 많지 않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낮술이었다.
여행은 나에게 일탈과도 같았다. 일상에서 평소에 하지 못 했던 것들을 해볼 수 있었고
그 일탈을 더 한답시고 했던 것이 낮술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낮술을 권하니 대부분 그렇게 선호하지 않았고
마음이 불편했던 시기라 혼자 있고 싶기도 해서
누군가 나에게 같이 다니자고 하면은 일정이 있다고 둘러 대며 혼자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동행을 해야 할 일이 생겼었다.
나에게는 사진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계시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알려주셨다.
그런데 그곳은 버스로 가기엔 어려운 곳이었고, 나는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곳에 가보고 싶었고, 숙소에서 동행을 구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동행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 두 명이었고, 이미 숙소에서 친해진 상태라서 같이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 좋다고 이야기하였다.
다음 날, 같이 사진도 찍고 즐겁게 논 뒤, 오후엔 월정리에 있는 한 카페에 들렀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예전엔 그래도 가끔 마시곤 했지만, 어느 순간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불편해져서 카페에 갈 일이 생기면 늘 좋아하는 유자차를 찾아 마셨다.
그래서 월정리 카페에서도 늘 마시던 유자차를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누나들과 같이 주문하러 간 카운터에는 유자차란 글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에 내가 다녔던 카페는 다 유자차가 있었는데 여기는 유자차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주문을 안 할 순 없기에, 그냥 무난한 한라봉 에이드를 골라 억지로 다 마셨다.
시간이 지나, 월정리에 혼자 가게 되었다.
예전에 누나들과 같이 갔던 그 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자차는 없지만 흔들의자가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보고 나서 그 카페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유자차만 마시던 나에게 새로운 차가 생겼다.
어느 날 나는 작가 선생님의 펜션에 놀러 갈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동백차 한 잔을 내어주셨다.
처음 마셔보는 동백차의 향이 마음에 들었고, 그 카페에 동백차가 있어, 주문해서 마셨다.
코로나로 인해 아무도 없는 카페테라스에 동백차를 들고 가서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따뜻한 동백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창문 너머 사람들이 거의 없는 흐린 바닷가를 보는 게
즐겁지만 어딘가 쓸쓸하면서 여유롭고 편안했다.
머물렀던 그 며칠 동안은 거의 매일 월정리에 있는 그 카페에 갔다.
시간이 지나 제주도를 다시 찾았을 때도, 늘 루틴인 것 마냥 기억 속의 카페에 들렀다.
그리고 나와 같이 동행했던 사람들도 항상 데려가곤 했다.
제주도를 다녀오고 나서 카페에 갈 일이 꽤 많이 생겼었다.
여러 카페를 다니다 보니 유자차와 동백차는 없는 경우가 꽤 많았고, 그럴 때마다 가끔 제주도에서 마셨던 카모마일을 주문해서 마셨다.
좋아하는 유자차나 동백차를 마시지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카모마일을 마시면은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그래서 요즘엔 여유가 필요할 때면 문득 카모마일이 생각 나 사서 마신다.
카모마일을 마실 때면 늘 제주도에서 카페를 갔던 때가 떠오르곤 한다.
나는 카페에 가는 것이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같이 가서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카페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다음엔 어디를 갈까요?'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요?' 하고 나누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정말 조금 아주 조금 그들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잘 지내고 있을지도 궁금하고 그때와 다른 내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적잖아 있다.
만약 그들을 다시 만날 땐, 내가 좋아하는 낮술을 안 해도 되니까
당신들이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예전처럼 여유롭고 차분하게 카페에 앉아 그들과 차를 마실 수 있을까
너무 많이 지난 세월에 그날들처럼 차를 마시며 마주 할 순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상상을 하는 것이니까
왜일까 오늘따라 카모마일의 맛이 좀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