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촬영 의뢰가 들어와서 오랜만에 서울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에 갈 때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생활권이 그렇게 넓지 않아서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갈 일이 드물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는 일이라고는 일 년에 10번이 채 되지 않는다.
지하철을 자주 타진 않지만, 지하철을 타게 되면 여러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그 시간들을 즐기곤 한다.
아무래도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 앉아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을 구경을 하다 보면 '놀러 가는 걸까' '무슨 일로 가는 걸까' 하는 짧은 상상을 하곤 한다.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수유리로 향하고 있었다.
동대문쯤 됐을까 내 앞에 세 자리가 나란히 비어 있는 좌석이 눈길을 끌었다.
비어있는 좌석을 보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열차에 타 그 자리에 앉으려고 다가가는데 학생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왜 자리가 비었는데 안 앉고 돌아서는거지?'
5초도 지나지 않아,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열차에 타는 것이었다.
학생은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들과 같이 앉는 것을 배려하며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요즘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각박해져 간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예전에는 이런 일들이 있으면 서로 양보해 주고 배려해 주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어느 순간 개인주의와 냉소적인 사회 분위기로 조금씩 물들어가면서 그런 일을 찾아보는 일은 흔치 않아 졌다.
그런 생각이 들게 된 건 3년 전이었는데
군대에서 전역하기 3주 전에 소대원들과 축구를 하다가 왼쪽 무릎의 인대가 두 개나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굽힐 수 없어서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늘 보조기를 차고 지팡이를 짚은 채 돌아다녔다.
당시에 밖에 나갈 일은 많지 않았는데, 무릎 치료를 하러 소개받은 병원에 간다거나
다리를 다치기 전에 해버린다고 해서, 성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기에 성당에 가야 하는 경우 말고는 나가는 일이 없었다.
병원에 갈 때나 성당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당연하게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자리 양보를 받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직 20대 중반인 내가 무릎에 보조기를 차고 지팡이를 짚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나이가 70이 넘은듯한 분들이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다쳤냐고 물으며 걱정되는 마음에 자리를 양보해 주셨지만
나이 많은 분들의 자리를 양보받아 앉는다는게 여간 불편하고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보조기를 차고 지팡이를 짚은 채 그 더운 여름날 두 달동안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나와 비슷한 또래에게 양보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서는 노인분들이나 아픈 분들 그리고 임산부들에게는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성인이 되니 언제 그런 것들을 배웠냐는 듯 다 잊고 죄다 못 본 척을 하며 핸드폰을 보기 바빴다.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을 보니 예전에 버스를 타고 다닐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3년 전의 기억 때문일까, 고등학생쯤 되는 그 학생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학생의 선의로 오래된 아픔을 위로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착한 척을 하는게 아닌
아이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그런 진심 어린 배려가 늘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 미아사거리에 도착했다는 벨이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