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지역 현지인들과 자주 어울리곤 한다.
이유는 상당히 간단했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고 그들의 삶에 조용히 묻어가며 그들의 삶을 보고 싶은데
그곳에서 나와 같은 타지인들을 찾아 어울린다면 그건 조금 재미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는 여행으로 이곳에 왔지만 그들에게는 이 도시가 본인의 삶이고 본인이 자라고 자라온 고향이다.
그들이 여행을 가지 않고도 나로 인해 여행을 느꼈으면 좋겠고 고향에서 외지인과 친구가 되는 경험.
그 경험은 흔한 일이 아니기에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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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에서 일주일 동안 여행을 하고 비행기를 타 가고시마 본토로 넘어왔다.
우연히 알게 된 아마미였지만,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기에
떠나면서 아쉽다기보다는 오히려 뿌듯한 느낌이 강했다.
가고시마로 돌아와서 첫날에는 가고시마 시내에 머물렀다.
늦게 도착한 탓에 할 것도 없었고 옛날 기억을 되짚기 위해서 이곳저곳 걸어 다녔다.
저녁시간이 돼서 찾아 놓은 라멘집에 가 저녁을 먹고 친구를 만나기로 하였다.
친구는 내가 예전에 가고시마에 왔을 때 알게 된 친구다.
가고시마에는 '야타이무라'라고 하는 포장마차 거리가 있었는데, 그곳에 위치한 한 가게의 직원이었다.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그 가게는 아마미오오시마 향토요리 가게였고 그 당시엔 아마미의 존재도 몰랐고 그런 가게인지도 몰랐다.
예전에 거기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셨고, 거기 있던 사람들과 친구와 친해졌다.
친구는 가게를 옮겼다고 했고 마침 멀지 않은 거리여서 가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가게로 가 맥주를 마시고 난 뒤 친구가 바빠 보여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가고시마는 남쪽에 위치해서 겨울이어도 그렇게 춥지 않았기에 가고시마의 밤을 산책하기로 했다.
가고시마에 오면 늘 대중교통을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데, 그래서인지 시내는 지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1시간 정도의 산책을 마친 후 숙소에 일찍 도착했다.
다음 날에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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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에는 카페를 하는 한국인이 있었다.
알게 된 것은 가고시마 여행지를 찾다가 알게 되었고
그분이 블로그에 올린 숙소가 있었는데, 그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예약을 부탁했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의 카페에 가게 되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는 전철 타고 4 정거장의 거리였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서 어떤 곳일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출발했다.
카페에 도착해서 사장님에게 인사를 드렸고 가고시마에 오늘 온 거냐는 질문에
아마미를 다녀왔다가 어제 가고시마 본토로 넘어왔다고 했다.
"가고시마 사람들도 많이 안 가본 곳인데 거길 다녀왔어요?"
"네 궁금해서 가봤는데 좋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개해주신 온천여관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사장님께서는 가고시마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신다고 했고
저녁 7시에 수업이 있는데 올 생각 있냐고 물어보셔서 오겠다고 했다.
숙소는 '유노모토'라는 역 근처에 있는 숙소였는데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동네가 굉장히 안정적이었고 시골틱해서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체크인을 한 후 온천을 하고 난 뒤 방에 누워 뒹굴면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리고 수업을 구경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유노모토에서 카페가 있는 역까지는 두 정거장이었는데, 작은 역이라서 사람도 없었고
처음 여기 올 때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한 상태로 왔던 터라 전철을 어디서 타야 할지 잘 몰랐다.
일본어라도 할 줄 알면은 표지판을 읽고 찾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터라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학교가 끝난 지 오래됐을 시간인데 교복을 입고 전철을 타러 가는 남학생을 보았고, 그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
지금 생각해 보면은 참 어이없는 일이다. 일본에서 한국말로 학생이라고 부른다는 게 무슨 경우인가
그렇지만 난 일본어를 할 줄 몰랐기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도 일본어로도 학생이 발음이 비슷해서 자기를 부르는지 알았던 건지
아무도 없는 역에 부를 사람이 나뿐이라 알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학생은 걷다가 나를 보며 뒤돌아 보았고 나는 학생에게 또다시 한국말로 물어보았다.
"히오키역을 가려면 어디서 타야 해요?"
사실 번역기를 돌리면 됐는데, 당시에는 그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습관은 아마미에서 생긴 습관인데
내가 아마미에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는 일본에서 흔히 볼 법한 2층집이었다.
이해하기 편하게 말하자면 짱구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장님은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중간나이정도 되시는 듯했는데
한국인 손님이 처음이라 나를 보고 굉장히 반가워하셨고, 어린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마지막 날에는 할 게 없어서 낮에 사장님과 같이 빨래를 널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나는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사장님은 일본말로 이야기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추 말이 통했다.
"찬수, 오늘은 어디 안 가?"
"뭐... 일주일이나 있었는데 가볼 곳 다 가본 거 같아서 오늘은 쉴라고요 이따가 마트 가 가지고 장 보려고요"
"뭐 먹게?"
"글쎄요 그냥 대충 보고 사 오려고요"
그 때문인지 여기서도 그 습관이 나와버린 것이었다.
근데 학생은 나의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영어로 다시 물어보았는데, 학생은 영어를 더 알아듣지 못했다.
학생은 생각하다가 이해했는지 알려주었고 학생과 나는 가야 하는 역이 같았기에
겨울이라 일찍 해가 져 깜깜한 플랫폼에 같이 앉아서 기다렸다.
열차가 오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고, 나는 심심해서 말을 걸었다.
"학생 지금 어디 가는 길이에요?"
학생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영어로 다시 물어봤지만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그래서 번역기를 돌려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생은 중학생이라고 이야기했고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야 해서 친구집에 간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중학생 때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답 해줄 자신은 없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념을 남기고 싶어서 학생과 사진을 한 장 같이 찍고 전철을 같이 탔다.
역에 내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나는 카페에 가서 수업을 구경했다.
수업에 온 가고시마 사람들은 나를 신기해하였고 여기까지 어떻게 올 생각을 했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다가 내일 뭐 하냐고 나에게 물어봤고 딱히 일정이 없다고 하니까
사람들과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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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 뒤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향했다.
가고시마를 3번이나 와서 그런지 크게 할 것이 없어서 혼자 중앙역에 있는 관람차를 타기도 하였다.
약속 시간이 돼서 어제 수업에서 만난 분들과 중앙역에서 만났고,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은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이라 아직은 한국어가 서툴렀고
그래서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발음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려고 했다.
약속이 끝나고 다시 유노모토로 가야 했다.
전철을 타고 30분 정도 갔을까, 어느덧 유노모토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릴 준비를 하고 나서 전철에서 내렸다.
전철에서 내려 옆을 보았는데, 옆 칸에서 어제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중학생 친구가 있는 것이었다.
학생은 나를 보며 먼저 반갑게 인사했고, 나도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오늘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국어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 어디가! 집 가? 옆에는 누구야 친구야?"
학생은 웃으면서 친구가 맞다고 이야기하였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친구는 처음 보는 한국인이 한국말과 영어와 일본말을 섞어서 자기 친구에게 친하게 이야기하는 게 많이 의아했고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역에 내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우리 셋은 같이 역 밖으로 나왔다.
유노모토 역 앞에는 편의점과 자판기가 있었다.
나는 두 친구에게 편의점을 가리키면서 가자고 했다.
시골이라 밤 10시에는 편의점이 문을 열지 않았고, 아마미 공항에서 산 아마미오오시마 동전지갑을 열어 동전을 찾아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서 이야기했다.
"어제 길 알려준 거 고마워서 사주는 거야. 친구랑 하나씩 마셔."
어쩔 줄 몰라하던 두 친구는 서로 고민하다가 콜라를 하나씩 뽑아 마시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그 친구들의 부모님이 차를 타고 역까지 데리러 나왔다.
나와 잠깐이나마 친구가 되어줬던 그 소년은 부모님의 차에 탄 후 창문을 열어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인사했다.
그게 그 친구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벌써 그 일이 있던지가 8년이 지났다.
그 후로 유노모토에는 3번이나 더 갔지만 그 소년을 만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성인이 되어있을 것이고 그 동네에 계속 살고 있을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유노모토에 갈 때마다 그 친구가 잘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 친구와 찍은 사진은 가지고 있지만, 동네에서 그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냐고 물어보다가는
경찰서에 끌려가 조서를 쓸 것 같아서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가고시마를 사랑하는 여행객이지만, 그 친구는 가고시마가 나고 자란 동네다.
공통점이라고는 유노모토 말고는 전혀 없는 사이지만 우리는 같은 추억을 회상한다.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지
내가 그 친구를 보고 싶어 하는 만큼 그 친구도 나를 궁금해할지
더 이상 보기 어려운 그를 생각하며
오늘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떠올리기만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