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7일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의 시간이 나에게 남겨준 건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무엇을 남겨주었는지는 언제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갑자기 이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함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일까
창밖에는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풍경을 감싸고 있었다.
낯선 풍경에 더 이상 아름다움이란 느낄 수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들으며 창 밖에 펼쳐진 하얀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2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눈이 오는 이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새로움을 마주하면 설레던 내가 더 이상 새로움에 설레지 않는다.
어쩌면 새로움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워졌을 만큼 모든 게 다 싫어진 걸지 모른다.
짐을 가득 넣은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려야 했다.
눈 때문에 미끄러워진 발판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공기가 너무나도 차가웠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도 밖은 가벼운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플랫폼에서 역으로 내려가 화장실을 들린 뒤
택시를 타기 전에 담배를 피우러 역 앞에 있는 흡연부스에 갔다.
피부가 베일 것 같은 바람이었다.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았던 도시인데 자연스레 주머니에 손을 깊게 넣게 될 만큼 추웠다.
생각해 보면 이 역도 참 많이 바뀌었다.
처음 왔을 땐 이런 흡연부스조차 존재하지 않았는데
시간이라는 게 나와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닌 듯했다.
아무도 없는 흡연부스에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나던 중 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올 곳이 없는데... 뭐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누구인지 보았다.
예전에 가르치던 학생이었다.
"찬수쌤 ........."
"어 왜?"
학생의 목소리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렇게 좋은 일로 전화한 적은 많이 없었기 때문에 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었다.
"쌤 저 때문에 감기걸렸다매요...죄송해요..."
저번주에 가르치던 학생 두 명과 함께 성당에서 치킨을 먹었었다.
"쌤 근데 저 감기 걸렸어요."
"괜찮어~ 뭐 어때 그냥 먹자~"
안 옮을 줄 알고 말은 그렇게 했는데
내뱉은 말과 다르게 괜찮지 않다는 걸 다음 날에 알게 되었다. 감기에 걸린 것이었다.
살면서 걸린 감기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지독한 감기였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그래도 계획 한 여행은 가야 했기에 주사를 두 번이나 맞으며 버텨왔다.
감기에 걸리고 나서 이틀 뒤에, 같이 먹었던 다른 학생에게 카톡을 보내서 물어보았다.
"혹시 감기 안 걸렸지?"
"넹 왜요?"
"나 감기 걸려가지고 아마 그때 치킨 먹다가 옮은 거 같은데 근데 우리 이거 비밀로 하자 알면 또 울면서 전화와"
"알겠어요"
울면서 전화할 거라는 내 예상은 단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근데 말하지 말라면은 안 말 할 애인데 대체 누가 말한 걸까.
그러던 중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말할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자기 유희를 위해 누군가가 곤란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
이해가 안 됐다.
그렇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니야 나 감기 안 걸렸어 여행 왔는데? "
"진짜요?..."
"감기 걸렸으면 여행 못 왔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셔요"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담배를 마저 피웠다.
추운 공기에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담배를 다 피우고 재떨이에 꽁초를 버린 뒤 흡연부스를 나왔다.
이 도시에 와서 숙소로 향할 땐 늘 역 앞에 있는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간다.
버스를 타면 온 동네를 다 휘젓고 다니기에, 40분 정도 걸린다.
어느 날 택시를 타보니 5천 원밖에 나오지 않아, 그 뒤로는 그냥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눈이 많이 와서일까 오늘따라 택시정류소엔 택시가 없었다. 택시정류장엔 나와 같이 택시를 타려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의 짐을 보며 이곳에 여행을 왔는지 아니면 이곳에 살고 있는지 상상하다 보니 택시가 왔다.
택시를 타고 항상 내리던 사거리에 가달라고 했다.
10분쯤 가다 보니 사거리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숙소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올해 초에도 왔던 곳인데,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던 따스한 분위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날씨 때문일까
무거운 어둠과 대비되는 눈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밀어내는 걸까
무엇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무엇도 더는 알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었으니까
원래 이 도시에 오면은 항상 가는 숙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 가는 숙소를 잡았다.
처음 가는 낯선 숙소를 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존에 알던 사장님 마저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 모른다.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은 부실정도로 하얗고 깨끗했다.
걸을수록 내 신발 사이로 눈이 들어와 양말을 적셨다.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넘어지지 않으려 집중해서 걷다 보니
불쾌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새로이 쌓인 눈을 밟아 천천히 길을 가고 있었다.
얼마나 더러운지, 내 발자국이 남겨진 눈들은 더 이상 깨끗하고 하얗지 않았다.
항상 활기차고 북적해 보였던 이 도시가
오늘은 모두가 떠나버린 폐허 같았다.
낯선 풍경마저 내 기분을 올려주진 못 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숙소 앞에 도착했다.
1층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흔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방에 들어가니 무언가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새로운 숙소에 가면은 조금은 나아지겠지 싶었다.
숙소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새로움은 없었고 낯섦만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 했다.
살짝 젖은 신발을 다시 신는 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 도시에서 겨울 밤거리를 돌아다닌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두컴컴하고 가게에 불 하나 켜져있지 않은 이 거리가 오늘따라 유달리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여기서도 초라해지고 싶진 않았다.
숙소를 나와 1층에 있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볼 품 없는 이방인이 하나 서있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볼품없는 건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언젠가부터 이 동네에 오면 늘 가는 중국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홀로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반주를 한다.
몇 년 전 제주도에 갔다가 이 동네에 들러 하루 잔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 동네에 올 때면 늘 그렇게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식당은 숙소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아주 가까웠다.
식당에 들어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먼저 나온 소주를 뜯으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흰 눈과 짙은 어둠이 대비되는 거리를 바라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처음 여기서 밥을 먹던 2019년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뭐가 그렇게 잘 못됐던 걸까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그땐 기대되는 일도 많았고 설레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리고 그 말도 꼭 전했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요리가 나오기 전, 음식을 기대하며 즐겁게 먹었던 단무지와 소주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맛이 없는지 모르겠다.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시킬 겸 거리를 걸었다.
많은 눈이 와서일까, 주말이면 늘 북적거려서 웬만하면 오고 싶지 않았던 이 동네가 많이 휑하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문을 닫은 가게들이 즐비해있었고, 사람들은 거의 다니지 않았다.
늘 북적이던 거리가 텅 비어버린 게, 내 마음과도 같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려다가 술을 더 마시고 싶어서 숙소 1층에 있는 술집을 갔다.
술집은 나에게 너무 어두운 분위기였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평소에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누군가가 내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오늘은 모르는 그대들 사이에 엑스트라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게에는 모르는 그대들은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인지 술도 맛이 없어서 계산을 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곳저곳 서성이다가, 오코노미야끼를 파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사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은 아니었다.
가고시마에서도 먹은 적이 없는 음식이었으니.
2층에 올라가 혼자 음식과 술을 마시는데, 뭔가 초라하고 덧없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혼자 밥을 먹어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술을 마시며 혼자 여러 생각을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겼을까.
다들 나에게 왜 그랬을까
더 이상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내일을 받아들이기가 무서웠다.
쌓여있는 눈 속에 더러운 마음들과 기억을 묻고 싶었다.
지난 4년의 시간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나에게 남겨진 게 없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일지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은 것을 보았고 남은 음식과 술을 억지로 다 먹은 뒤 가게를 나왔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웠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2023년 12월 17일 10:20
퇴실시간도 다가오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했다.
샤워실에 가서 씻고 난 뒤, 자리에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그래도 여행경력이 쌓여서 그런지 빠진 게 없는지 기계적으로 확인했다.
꺼내놓은 짐이 많이 없어서 두고 갈 것도 없었다.
퇴실하고 나서는 늘 가는 뭇국집에 밥을 먹으러 갔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는 저녁에 먹던 곳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이 집을 낮에 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오늘은 뭐 하면서 하루를 때워야 하나 생각했다.
지금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고, 돌아가는 기차는 6시 30분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차시간을 당길까 고민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기차는 집이 아니라 천안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친한 친구가 천안에 살고 있었고, 근처에 있는 다른 친구와 천안에 살고 있는 친구네 집에 가서 자기로 했기 때문이다.
밥을 먹다가 문득 운전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을까 평소에 하지도 않던 운전을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내 첫 운전은 아마미오오시마에서 시작했다.
섬을 돌아다니려면 차가 필요했고, 그래서 가기 전에 면허를 따서 차를 렌트해 운전을 했다.
그 후로 운전은 가고시마에서만 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운전자석, 그리고 차도의 진행방향은 반대였다.
일본에서만 운전하다 보니 한국에서 운전하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
근데도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대여 어플을 켜 근처에 대여할 수 있는 차가 있는지 확인했다.
버스를 조금 타면은 차를 빌릴 수 있었다.
업체에서 준 무료쿠폰이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모든 게 알맞았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급히 밥을 먹고 차가 위치한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어느 건물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찾아 문을 열어 가방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바닷가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었다.
아직은 길이 녹지 않아 운전이 어려웠지만, 금세 적응하고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시를 빠져나와 바닷가 쪽으로 갈수록 눈이 많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바다가 꼭 보고 싶었다. 눈 때문에 멈추고 싶지 않았다.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죽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나를 바닷가로 계속 이끌었다.
바닷가에 가던 중, 어느 주차장에 차를 세워 화장실에 들렀다.
눈이 얼마나 왔는지, 화장실입구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어 무릎까지 눈 속을 파고들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옅게 보이는 바닷가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가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도로를 계속 달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짓이었다.
쌓인 눈에 타이어자국을 남기는 차는 나와 버스 말곤 없었다.
바닷가로 향하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는 게 많이 위험했다.
그렇지만 가고시마, 아마미에서 쌓인 험지운전이 도움이 됐는지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오 분쯤 더 달렸을까 그렇게 가고 싶던 곳에 도착했다.
눈이 많이 쌓인 분위기에 바닷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잠시나마 모든 것을 다 잊을 만큼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공기는 차가웠고 땅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었다.
그리고 바다는 너무나도 푸르렀다.
잠시나마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밝은 마음이 조금 들어왔다.
바닷가를 원 없이 보는 시간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제주도에 있던 이후로 바닷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바다를 보면 우울한 마음이 더 강해져 좋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하얀 눈들과 푸른 바다의 조화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바다를 원 없이 본 후로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차를 타고 천천히 이동했다. 눈이 많이 쌓여 위험했으니까.
돌아가던 중 문제가 생겼다.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눈이 많이 쌓여 바퀴가 계속 헛돌았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군 생활하면서 눈길운전에 대한 대처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문제없이 올라갔다.
돌아가는 길은 바닷가와 다르게 맑은 날씨가 길을 안내했다.
도시에 들어가는 길이라 그런지, 제설이 많이 돼 있었다.
반납시간까지는 여유가 조금 남아서 어떡하지 싶다가 호수공원에 들르기로 했다.
반납지에 가는 길에 있었기도 했고 지난봄에 갔을 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가고 싶었다.
공원주차장에 차를 대고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호수를 바라보며 산책길을 걸으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지난봄에 왔을 때는 호수공원을 걸으며 친구와 세 시간 동안 전화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참 괜찮았던 시절인데 불과 몇 달 만에 이렇게 많은 게 바뀔지 몰랐다.
시간을 보니 반납할 시간이 다가와 이동을 하기로 했다.
공원 근처 분식집에 호떡을 팔던 게 기억 나 먹을까 했지만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10분쯤 도로를 달리니 반납지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어플로 차를 반납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 가벼워졌다.
기차시간에는 여유가 있어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5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익숙한 동네들을 지나 버스는 역에 도착했다.
기차시간은 30분 정도 남았다.
담배를 피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 마셨다.
시간이 지나,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확인하고 기차가 멈추고 나서 천천히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았다.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은 덜 초라해 보였다.
돌아가는 기차시간을 바꿀 수 없던 이유는 친구집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라고 내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나 보다.
2023년 12월 17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언젠가부터 생일이 반갑지가 않았다.
내 생일은 12월이다. 생일이 왔다는 것은 한 해를 보내야 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올해 생일도 그렇게 반갑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올해 생일은 그럭저럭 괜찮은 게 아닌가 싶었다.
기차는 천안의 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어폰에서 노래가 그에 맞춰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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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밤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해
거리는 여전히 차가워.
언젠가의 미래가 이렇게 바보 같을 줄이야
왠지 웃음이 나네
늘 말하지 못한 채 익숙해져
사실은 주저앉을 만큼 괴로워
끝나버린 사랑의 온기로 아직도 손가락을 데우고 있어.
사랑스러움은 눈처럼 녹아주지 않아.
녹아주지 않아.
애달픈 아픔
네가 말하려던 그 말을 가르쳐줘
솔직해질 테니까
밤하늘 앞에서.
이키모노가카리 – [やさしく、さよな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