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근린공원에서 시대 읽기

도토리 줍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by 찬스

불광근린공원도 가을이다. 걷다 보면 낙엽이 떨어지고 이따금 ‘투둑’하고 밤이나 도토리가 떨어지기도 한다. 오늘은 자주 가는 벤치에 없던 메모가 보였다. ‘도토리(다람쥐 먹이) 채취금지! 지금멸종상태!’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붙였다기엔 지나치게 귀엽게 적혀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보니 알맹이가 빠진 도토리 머리가 꽤나 많이 보였다. (도토리 꼭지가 맞는 표현이려나) 그동안도 사람들이 많이 주워갔나 보다. 불광근린공원의 이용자는 90%가 어르신들인데, 대부분 비슷한 차림에 비슷한 움직임으로 비슷한 시간에 산책을 하신다. 요즘은 도토리 줍는 것이 유행이다. 산책로 내리막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뭇가지로 낙엽 사이를 뒤적이신다.

간신히 하나 찾은 도토리

나도 어릴 적 뒷산에서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으러 다녔다. 그리고 하나하나 껍질을 깨서 도토리묵을 쒔다. 그래서 그 어르신들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토리를 줍지 마세요'의 메모와 '불법채취금지'의 플래카드가 눈에 더 띄었다. 메모와 도토리 줍는 할머니. 나는 왠지 모르게 그 둘 사이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책로를 걷다가 도토리가 보이는 것. 그 도토리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과 그걸 능숙하게 주어내는 동작까지. 그건 어르신들의 본능일 수도 있겠다. 인류의 오랜 조상이 채렵본능 까지는 아니더라도 산에서 들에서 풀을 뜯고 나무를 헤치며 다녔던 그 본능으로 도토리를 줍고 계신 걸 수도 있겠다.


마치 지금의 아동들은 알려주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처럼 그분들에게는 도토리가 떨어질 계절에 도토리를 줍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 메모가 채렵세대의 어르신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도토리를 주워서 다람쥐가 없어졌다는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메모를 쓴 사람에겐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여기는 ‘불법채취 금지 구역입니다. 도토리 줍기를 멈춰주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채렵세대에가 듣기엔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겠나.


도토리와 메모 사이에서 명확히 말하긴 어려운 큰 공백이 느껴진다. 최근의 정치적인 움직임과 집회는 꼭 별개로 하더라도, 세대간의 소통에서 햇수로는 가늠하기 더 큰 간격이 있지는 않나. 본능이 다를 정도로의 깊은 간격. 그래서 오히려 그 간격을 메우기보다는 어떻게 관찰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천만이라는 인간이 끼여 살고 있다는 생태계 문제를 조금 떨어트려놓고서라도 그런 서울에 첫돌도 안지나 유튜브를 보는 세대와 첫돌도 안지나 엄마 등에 업혀 밭일을 배우던 세대가 공존한다. 시끄럽지 않을 수가 없겠다. 불광근린공원에서 도토리 줍는 어르신과 귀여운 메모 사이에서 시대 한 단락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