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밖에서
나는 나를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될지 아직도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확실히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콘셉트를 정해 SNS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음식, 유머, 육아, 공감 글 등의 콘셉트로 SNS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아무거나' 찍고, 쓰고, 올린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 주부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을 '작가'라는 말로 에워싸기에는 아직까지는 다소 무리가 있다.
책을 좋아하지만 다독가는 아니다. 책 리뷰를 꾸준히 할 정도로 많은 책을 사거나 읽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아예 안 읽는 편도, 사지 않는 편도 아니다. 뜨개를 좋아하지만 대단한 실력은 아니다. 우연히 시작한 뜨개로 간단한 것들은 뚝딱 만들 수 있지만(어떤 이들은 그것도 대단하다고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역시 부족하다. 물론 그런 기준은 제각각이기에, 내가 뜨개를 잘한다고 살짝 설친다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돈벌이에 뛰어들지 않는 한은 말이다. 카페를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주로 동네에 있는 곳들만 다닌다. 카페의 개성 있는 분위기와 신선한 원두가 느껴지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그것에 대단히 빠져 있다고 말하기에는 역시 애매하다.
대체로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폭넓게 활동하지는 않는다.
카페, 책, 음식, 인테리어 소품 등, 그 어디에도 자신 있게 나를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은 항상 내 기분을 애매하게 만든다. 브런치 메인 화면에서도 그런 기분을 자주 느낀다. '브런치 추천 작가' 아래 있는 작은 카테고리에 영영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든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늘 화면 밖에서 그 부분을 가만히 바라본다.
작가? 작가라고 내세우기엔 출간한 책이 없다. 구독자도 많지 않다.
작가 지망생? 지망생이 맞긴 하지만 나를 그 안에 나를 욱여넣고 싶지는 않다.
결국 내가 선택한 카테고리는 '주부'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주부'는 어쩐지 그럴싸하지가 않다. 명문대를 나온 주부도 아니고, 대기업에 다녔던 주부도 아니고, 외국생활을 하는 주부도 아니다 보니, 내 이름 아래 있는 '주부'라는 명사는 덩그러니 자리만 지키고 있다. 그냥 '주부'가 글을 쓴다고 하지 말고, 다른 말들을 갖다 붙여볼까. 역시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끼워 맞추기 식으로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다.
어깨 펴고, 당당하게!
마음속으로 외쳐보지만 가만히 있어도 등이 굽는 기분이다. 글을 쓰고 있지만 이 또한 애매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듯한 주제로 잘, 멋지게 쓴다. 명확한 콘셉트가 느껴지는 브런치북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언제 그런 걸 만드나 싶다. '월라 X 브런치, 브런치북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를 위해서 급히 만든 브런치 북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애매하다.
목표를 세워서 하나씩 이뤄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애초에 목표라는 걸 거창하게 세울 생각을 하지 않는 나다. 멀리 보면 너무 많은 게 보여서 겁부터 난다. 글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는 건 글을 엉망으로 쓰면서 자신감이 충만했던 시절에나 가능한 일로 느껴진다. 그래서 뭘 어쩌겠냐고 묻는다면, 그저 오늘 쓸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대답하겠다. 내게는 그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애매한 방법이지만 가장 정확하게 실천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다. 조금씩 무엇이라도 해 나가는 일이 지금의 내겐 중요하다.
"우리 선수들, 하나씩, 차근차근해 나가면 됩니다."
얼마 전 올림픽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것을 보았고, 깨달았다. 선수 출신 해설자는 선수들을 보며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어떤 종목, 일, 어쩌면 모든 것에 해당되는 말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경쟁이지만 결국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 뜻이었다. 올림픽에 나오기 위해 선수들은 수많은 시간 노력한다. 그 노력을 후회 없이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만 보지만 하는 사람은 과정을 즐겨야 한다. 과정을 즐기다 보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점차 사라진다. 차근차근하다 보면 무엇이라도 되어 있겠지, 나를 다독인다. 무엇이 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하나씩, 차근차근, 카테고리 밖에서 애매한 기분을 떨쳐내며 글을 쌓아 올린다.
테트리스처럼 내려오는 단어를 받아낸다.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억지로 콘셉트를 잡기 않고 애매한 채로 계속해보련다.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해보련다.
다음에는 어떤 글을 써볼까.
용기를 내서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