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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l 23. 2021

지금은 B급 잡문을 쓴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노력의 기회


글에 급이 있다면, 내 글은 어디쯤 있을까?


요즘 내가 쓰는 글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이 글을 쓴다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이렇다 할 스타일의 문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글은 아니다.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는 것은 이미 책을 출간한 작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예술은 개성이 있어야 하면서도 기본기가 탄탄해야 빛을 발한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잘하는 건 기본이고 나만의 스타일까지 갖춰야 한다니 말이다.




지난 5월, 아홉 살 딸아이와 함께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관람했다. 피카소,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작가다. 명성답게 전시회장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저 관람권이 생겨서 간 나는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내는 이유를.



어머니의 초상, 피카소(1896년) , 피카소가 15세에 그린 그림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렸다는 피카소를 흔히들 천재라고 지칭한다. 피카소가 15세 이전에 그린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말이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피카소는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  피카소 -


피카소가 죽고 난 후에야 밝혀진 수 백장의 크로키는 그가 얼마나 노력 파였는지를 증명한다. 그는 'unlearn' 과정, 배운 것을 고의적으로 잊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의 그림을 그려냈다고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낸 것들을 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천재인 그에게도 분명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와 나는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전시를 관람했다. 한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추상화를 보면서 우리는 제목에 있는 것들을 그림에서 찾기도 했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아이에게 피카소 그림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잘 그린 그림도 있고, 일부러 어렵게
그린 그림도 있는 것 같아.


아이의 시각에서 느낀 솔직한 관람평이었다. 피카소는 76세라는 나이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작품을 모방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성공한 화가라고 할 수 있는 피카소가 계속해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피카소는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의 그림을 시대별로 나누어 보면 한 사람이 그렸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보면 그의 그림 실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이의 말대로 일부러 저렇게 그린 건가 오해를 살만도 하다. 보이는 그대로 그릴 수 없어서, 그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10대에 이미 대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대단했다.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늘 도전했던 피카소의 자세는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 정도 수준에 이르면 편안한 길에 접어들길 원할 지도 모른다. 피카소는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한다. 피카소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천재성에 기대어 그리기 편한 그림을 꾸준히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배운 것을 잊는 과정까지 감수하며 자신의 세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그의 창의적인 도전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파리의 카페에 앉아 있는 파블로 피카소에게 다가와 자신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피카소는 몇 분 만에 여인의 모습을 스케치해 주었다. 그리고 50만 프랑(약 8,000만 원)을 요구했다.

여자는 놀라서 항의했다.

"아니,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그러자 피카소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나는 당신을 그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 피카소에 관한 일화-


92세에 생을 마감한 피카소는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저 타고난 천재라고만 생각했던 피카소, 그가 천재이기 전에 노력파였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면서 여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어렵지 않은 단어와 문장을 가지고, 최대한 세련된 방식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다. 지식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기에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되고자 하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행운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꼭 출판사를 통하지 않아도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 독립출판을 통해 나오는 책은 그야말로 대중음악이 아닌 인디음악처럼 느껴진다. 특히 동네책방에서 만나는 독립출판물에는 독특한 감성이 있다. 홍대에 가야 볼 수 있었던 인디밴드처럼 말이다. 그렇게 독립출판은 문학의 다양성을 구축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예술은 기존의 형식과 틀을 깨는 것을 즐긴다. 컴퓨터에서 파일의 속성을 변환하듯이 모든 예술 작품들이 장르의 구분 없이 넘나 든다. 웹툰이나 웹 소설이 드라마화되고, 드라마가 책이 되기도 하는 자유분방한 시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좋은 글을 쓰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늘 망설여졌다. 유능하고 대단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감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정말 겉멋만 잔뜩 들었다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나는 내가 못마땅했다. 어떤 날에는 내 마음과 일치하는 문장을 읽고 들떴다가 이내 슬퍼졌다. 벌써 이 문장을 누군가 썼다니, 이제 와서 내가 이 문장보다 더 나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싶어 초조했다.


나는 내가 쓰는 글보다 항상 더 나은 글을 원했다. 그래서일까. 대단하지 못한 느낌에 사로잡혀 누군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절대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못을 박아버렸다. 이제 그 못을 빼야겠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쉽게 쓰지 못할 글을 쓴다 해도, 나는 나만의 글을 쓰면 된다.

피카소처럼 타고난 천재는 아니지만 그가 했던 노력만큼은 내게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다. 그의 말처럼 일단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쓰기 시작하면 된다.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누군가의 글 역시 쉽게 쓴 글은 아닐 것이다. 글의 자간과 문장 사이에 작가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잘 쓰기 위해서는 역시 쓰는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어볼 생각이다. 글에 급이 있다면 내 글은 B급 잡문 정도 될까. 그래도 좋다. 제목을 이미 그렇게 정했으니 말이다.



피카소 참고 자료 - 한국경제신문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107087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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