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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l 26. 2021

심부름의 기억

놓칠 수밖에 없는 순간들


아홉 살인 딸이 처음으로 심부름을 했다. 예전 같으면 심부름이 대수인가. 혼자 버스도 타고 다녔을 나이다. 아이도 진작부터 혼자 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왔지만 정작 자신이 없는 쪽은 나였다.


나 혼자 갈 수 있어!


아이는 신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어쩐 일인지 남편도 단번에 심부름 허락해 주었다. 짧은 시간 수많은 걱정이 내게 밀려왔다. 차 조심해야 될 텐데,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은 하면 할수록 느는 게 분명하다. 꼬리의 꼬리를 물고 불안감은 커졌다. 아이의 홀로서기 연습은 내게도 넘어야 할 숙제다.

베란다에서 아이가 씩씩하게 걷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혼자 가는 게 저리도 좋을까. 살짝 서운한 마음도 든다. 길을 건너는 구간에 도달했다. 아이와 나의 거리가 이렇게 멀어진 적은 없었다. 아이는 꽤 신중하게 좌우를 살피고 길을 건넌다.

누워만 있던 아기가 기어 다니고,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몰랐다. 그 순간이 이토록 아득해질 줄은. 내게 뛰어와 안겼을 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 아이는 우리가 주는 그런 마음을 토대로 성장한다.


아이는 내 걱정과는 달리 환한 얼굴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칭찬을 받을 준비가 된 얼굴이었다. 심부름이 어땠냐는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걸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오예~'라고 외치고 싶었다고.


우리는 가끔 같은 주제로 교환일기를 쓰는데 그 첫 주제가 '심부름'이었다. 나와 아이의 글 일부를 공개하겠다.


'심부름'을 주제로 나와 아이가 쓴 글


지금 와서 읽어보니, 나의 걱정과 아이의 성취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에게 언제나 아기처럼 느껴지는 아이의 성장은 예상보다 늘 앞서간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겁이 났다고 하는 아이의 표현이 참 솔직하다.


힘내! 할 수 있어!


아이는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혼자 무엇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배운 순간이 여실히 느껴지는 글이다. 그날 심부름 이후로 또 심부름을 시키지는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심부름을 해냈던 그 특별한 순간을.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때때로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가 사 온 빼빼로는 눈앞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입안에서 똑똑 부러뜨려 먹는 크런키 빼빼로는 고소하고 달콤했다. 아무리 과자 봉지를 눌러보아도 남은 건 없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내 어린 시절 심부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가기 싫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아빠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시절 부모가 아이에게 소주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건 흔한 일이었다. 요즘은 아이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켜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그때의 소주 심부름은 괜찮고, 지금의 소주 심부름은 안 괜찮다. 단칸방 한구석에는 소주의 단짝 유리 재떨이가 있었다. 야리꾸리한 장밋빛 쟁반 위에 놓인 유리 재떨이와 담배, 라이터는 아빠만의 전유물이자 집안 권력의 상징이었다.


심부름 가는 길에 네가 먹고 싶은 것도 하나 사, 잔돈은 가져라고 했다면 내 기억이 좀 달라졌을까? 아빠는 내가 심부름을 다녀오면 거스름 돈까지 정확히 확인했다. 순진했던 나는 백 원도 뒤로 빼돌리지 않았고, 그 거스름돈은 아빠의 재떨이 쟁반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작년에도 아빠는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시켰다기보다는 부탁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볼 일이 있어 잠시 친정에 들렸을 뿐인데 아침부터 소주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칠순이 훌쩍 넘은 아빠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내게 소주 심부름을 부탁했고,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무서워서 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과는 달랐다. 그 눈빛에는 '정말 가기 싫어. 귀찮아. 부탁.'라고 써져 있었다. 심부름 가는 발걸음은 역시 무거웠다. 아침부터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를 사는 주부가 행복할 리 없었다.


'이건 제 술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아빠 심부름을 하고 있어요.'


변명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빠가 준 하얀 봉지에 술병을 넣고, 불안한 마음으로 걷는 내 모습은 어쩐지 어린 시절 심부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그 술이 어떤 맛인지도 모르면 열심히 심부름을 했다. 백 원짜리 몇 개쯤 빼돌려서 내가 좋아했던 '비틀즈'나 사 먹을 걸 그랬나. 비틀즈를 사서 입에 털어놓고 질겅질겅 씹으며, 그 불안한 기분이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릴 걸 그랬나. 이제는 그 술이 어떤 맛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서 아빠는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 다른 이들의 걱정은 필요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아빠의 심부름을 몇 번이나 더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주 빨건 거, 디스플러스 한 갑.





아이와 내게 심부름은 조금 다르게 기억될 것 같다. 우리 머리에 내려앉은 한낮의 볕처럼 따스하게, 그날이 아이에게 기억되었으면 한다. 내 심부름의 기억은 무슨 수를 써도 그런 따스함과는 거리가 먼, 아빠의 유리 재떨이 근처 먼지처럼 남아있다 해도 말이다.


오예, 잘했다!


나도 너처럼 외치고 싶지만 꾹 참는다. 더 대견한 날들이 많이 남아있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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