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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y 20. 2021

내성적인 동네주의자

배다리 산책

저의 동네 사랑은 이십 년 전 이사를 오게 된 이후로 시작되었습니다. 동인천역은 1호선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인천행 가는 열차나 동인천행 급행열차를 타면 쉽게 올 수 있는 곳입니다. 동인천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땅콩 가게 앞으로 가거나 비둘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북광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합니다. 여섯 번째 살게 되었던 동인천 근처의 그 집은 우리가 살던 집 중 가장 좋은 집이었습니다. 신축 아파트였으며, 동생과 제 방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그 집에 사는 동안 알게 된 동인천에게 의심의 여지 없이 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성적인 저는 글로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행동반경이 넓어지면 피곤이 함께 동반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멀리 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에서 놀아야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좋다고 감탄하다도 결국 집에 도착하면 집이 최고라고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동네 자랑대회가 있으면 나가서 발표는 못하더라도 응원은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얼굴은 되도록 응원 피켓으로 가리고요. 




동인천역은 이제 구도심입니다. 동인천 북광장은 노숙자와 비둘기가 점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난잡합니다. 노숙자들은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옹기종기 모여 친목을 다지고, 비둘기들은 오고 가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뚱뒤뚱 광장을 낮게 날아다닙니다. 그곳을 지나 한복거리에 들어서면 오래된 건물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골목에서 당장이라도 깡패 서너 명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그곳에 존재한 적은 없었습니다. 옛 명성을 잃은 골목이라 해도 아직 그곳은 한복거리가 분명합니다. 고운 색감의 한복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한 누군가는 그곳을 찾을 테니까요. 길 끝까지 가면 배다리라는 곳이 나옵니다. 



배다리는 오래전, 작은 배가 바닷물이 들어오던 수로를 통해 철교 밑까지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에게 개항장 일대를 빼앗긴 조선인들이 모이며 형성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습관처럼 배다리라고 불렀는데 철교 밑까지 작은 배가 다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낭만적입니다. 배다리는 헌책방 거리로 유명합니다. 아벨서점, 한미서점 등 몇 곳은 제가 학창 시절에도 드나들었던 곳인데 지금도 그 모습 거의 그대로입니다. 동인천은 진정한 레트로가 살아있는 도시입니다. 동인천 곳곳에 숨어 있는 레트로의 품격을 제가 차차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배다리 헌책방을 지나 창영초등학교 쪽으로 걷다 보면 우측에 널따란 꽃밭이 있습니다. 정확한 명칭이 없어서 꽃밭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꽃밭 양옆으로는 구옥들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곳을 걷노라면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작정하고 꾸며놓은 공원보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여섯 번째 살던 집에서 1년을 조금 넘게 살다가 결국 또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저는 이 동네를 더욱더 깊숙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동인천 북광장부터 배다리까지 짧은 산책을 함께 했습니다. 산책은 이제 시작입니다.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요? 공원? 카페? 


동인천, 저희 동네라면 어디든지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시간만 내어 주신다면요. 




참조 : 배다리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96306&cid=59276&categoryId=5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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