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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y 27. 2021

소규모 에세이 작업실의 실태

그들은 모르는 나의 공간

내성적인 미래 에세이 작가인 나의 작업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주로 거실 중앙에 놓인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데스크톱을 없애고 저렴한 노트북을 구매했다. 컴퓨터를 잘 아는 지인에게 노트북의 용도와 구매 가능 금액을 이야기하고 적절한 제품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 결과, 지금 내 앞에 ASUS 로고가 중앙에 박힌 노트북이 놓여 있다. 노트북의 용도는 간단한 문서작성과 쇼핑을 위한 검색 정도였기에 만족한다. 노트북을 산지 5년이 되어간다. 


노트북을 일주일 내내 한 번도 켜지 않은 날도 있었다. 화장대 아래 고이 모셔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썼기에 더 그랬다. 노트북이 제대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노트북 전원 버튼이 바빠졌다. 처음에는 모바일 앱을 이용해서 글을 썼는데 아무래도 한계가 느껴졌다. 모바일 환경에 맞춰 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매번 짧은 글을 쓰게 된다는 단점도 분명했다. 모바일로 보기에는 글의 분량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노트북을 통해 보면 쓰다만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짧은 글이라고 해서 무조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을 위해서라도 나는 노트북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느 정도 글쓰기 워밍업이 끝났으니 글의 분량도 늘릴 겸, 1일 1포스팅을 해야겠다고 혼자 다짐하고 나서 노트북을 화장대 아래 놓지 않기로 스스로 정했다. 거실 탁자 위에 자리를 고정시켜놓아야 시간이 날 때 망설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거실에서 안방 화장대까지의 실제 거리는 고작 10걸음 이내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다. 화장대 밑에 있는 노트북을 옮겨 다시 세팅하는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느냐, 바로 시작할 수 있느냐의 차이는 크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나의 소규모 에세이 작업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나는 집에 홀로 남겨진다. 그럼 망설임 없이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고, 캡슐 커피 한잔을 내린다. 거실에 앉아 노트북 코드를 꽂고, 이메일 확인을 한다. 거의 광고 메일이지만 회사 다닐 때처럼 형식적으로 그 절차를 거친다. 그다음은 블로그를 확인한다. 블로그에 올라간 글들을 다시 한번 살피고,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쓸지도 고민한다. 마음을 담은 글을 쓰기도 하고, 내가 구매한 제품 리뷰글을 가볍게 쓰기도 한다. 


가족들이 집에 없는 사이에 최대한 개인 시간을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 마음이 항상 바쁘다. 지난주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작업실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펼쳐보지만 실제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다시 나는 편안하고 익숙한 곳에 앉아 글을 쓰기로 한다.


다른 에세이 작가의 작업실은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진다. 유명한 에세이 작가는 작업실이 따로 있을까? 어떤 이는 나른한 오후 카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면서 최신형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까? 나처럼 집에서 아이의 질문을 다 받아내며, 글을 쓰기도 할까? 




나의 소규모 에세이 작업실의 실태는 우리 집 거실이다. 그것도 가족들이 집에 없을 때나 제대로 그 모습을 갖출 수 있는 형편이다. 아이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대개 내가 쓰는 탁자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는다. 에세이 작가에서 주부로 돌아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와 동거하는 가족들은 모른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은 모른다. 내가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실이 사실은 나의 에세이 작업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작업실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가족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과 익숙한 공기, 아무 때나 열 수 냉장고, 기대 쉴 수 있는 소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몬스테라까지, 모든 것이 내게 안정감을 준다. 


지금은 거실 중앙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에게 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아이의 책상에 지우개 가루가 자꾸 쌓인다. 낼모레 그림 대회에 보낼 그림을 오늘 그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여주길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조금 지적했더니, 바로 기분이 상한 얼굴로 공격적인 말을 한다. 나는 내 작업실도 양보하고 이렇게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쩐지 억울하다.






'엄마, 브런치 작가야! 그러니까 자리 좀 비켜줄래?'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혼자 상상해본다. 아이는 손으로 턱을 받치고 그림을 그린다. 상을 받는 것과 관계없이 최선을 다 해서 그려서 완성하기만을 바란다고 말해놓고, 내 마음은 금방 태도를 달리한다. 이왕이면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지 않나 하는 마음에 자꾸 훈수를 두게 된다. 누가 내 글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나 또한 기분이 나쁠 것 같다. 당장 사과하자니 서로의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일단 미뤄두기로 한다.


오늘 8시에 달을 봐야 한다고 했던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8시 2분이다. 사과 대신 아이에게 말해야겠다.


"나랑 달이나 보고 오자!"


나의 소규모 에세이 작업실은 잠시 자리 비움이다. 금방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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