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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07. 2021

우리 동네 에세이 작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에세이 작가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답해 달라고 한다면 '우리 동네 에세이 작가요'라고 대답하고자 한다. 어떤 이는 겨우 그게 꿈인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도 아니고, 동네에서 잘 나가는 작가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도 의문을 품는다면, 한 마디 덧붙이겠다.


"그냥, 우리 동네가 좋아서요."


모든 것이 좋지는 않아도, 대체로 좋은 것들이 더 많은, 나는 동인천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바로 '동인천'이다. 동인천은 구한말 인천부 지역의 동쪽에 있어서 이 일대를 동인천이라고 불려 동인천역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인근에는 답동성당, 신포시장, 대한서림, 애관극장 등의 오래된 구시가지가 있다. 또한 자유공원과 신포동 일원에는 구한말 일제 강점기 개화기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남부역(신포동 방향)과 북부역(송현동 방향)은 지하상가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부역으로 가면 신포시장을 중심으로 자유공원까지 도보로 산책이 가능하고, 북부역으로 가면 송현시장을 중심으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관람이 가능하다. 또는 양키시장과 미림극장을 지나 배다리까지 추억 소환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동인천은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1990년대)까지는 학생들과 청년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으나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로 인해 상권이 많이 위축되었다. 동인천역은 인천백화점과 연결되어 있는 민자역사였으나 IMF 구제금융사건 당시 부도를 맞고 사라졌다. 이후 복합쇼핑몰로 새롭게 단장하는 듯싶더니 결국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런 이유로 지하상가와 역사로 이어지는 길은 다듬어지지 않은 시멘트 바닥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노숙인들이 그 바닥에 엎드린 채로 구걸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위키백과 참고)





동인천이 번영기였을 적 명함도 내밀지 못한 곳들은 이제 신도시가 되어 자신의 몸값을 자랑한다. 이 동네 사람이라서 하는 말이지만, 농담으로 이제는 돈이 없어서 이 동네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웃으며 한다. 실제로 동인천역에서 멀어질수록 집값은 한없이 비싸진다. 이 동네를 사랑해 마지않은 사람으로서 이곳이 왜 이런 신세가 되었나 싶으면서도, 여전히 이래서 좋기도 하다. 구도심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멈춰버린 곳, 세련된 도시의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인천에서 내가 발견한 매력은 바로 이것들이다.


1. 동인천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2. 동인천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3. 이런 동인천의 매력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동인천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새로 짓는 아파트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이 주를 이룬다. 한때 번화가였던, 화려했던 거리에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은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동인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곳들 중 하나인 '버텀라인'이라는 인천 최초의 재즈클럽을 소개해 보겠다. 그곳은 1983년 오픈했으며, 100년이 넘은 근대건축물 안에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도 몇 차례 지인들과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라이브로 재즈를 들으면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가보길 추천한다. 100년이 넘은 근대건축물 안에서 즐기는 재즈 음악이라니, 생각만 해도 몸이 들썩이지 않는가. 아무리 세련이 휘몰아치게 내부 인테리어를 해도 세월이 쌓여 자연스럽게 녹아든 분위기는 넘어설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공간의 맛을 음악과 함께 즐겨보길 바란다.


개항로통닭

레트로가 유행인 요즘, 동인천역에 내려서 '개항로'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맥주집과 카페들이 인기다. 대표적으로 '개항로통닭'과 '라이트하우스'가 있다. 그곳들은 남녀노소를 모두 환영한다. 또한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성공 확률이 높은 사진 맛집이기도 하다. '개항로통닭'은 옛날 전기구이 통닭과 맥주를 파는데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입구는 길가가 아니라 골목에 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바깥 문이 왜 잠겨 있나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골목에는 '개항로통닭'이라는 간판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걸려있다. 그 장소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야외 테이블이라고 하기보다는 마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공간에 앉아 옛 가요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면, 나도 나이가 지긋이 먹어가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라이트하우스(크리스마스 시즌)

'라이트하우스'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번 소개된 곳으로 일광 전구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이다. 낮에 가면 한적한 느낌으로, 밤에 가면 찬란한 불빛으로 매력을 자아낸다. 병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카페로 만들었고, 꽤 넓어서 어느 공간에 앉느냐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빨간 전구와 초록 전구로 옷을 갈아입는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실제로 지인들과 방문하면 모두 사진 찍기 바쁘다.

 

이처럼 동인천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낡고 오래된 것들을 다 버리기보다는 존중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껴진다.




어린 시절 보았던 익숙한 골목을 만나
정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 안에 숨어 있는 공간을 찾으며
새로운 감정을 발견한다.





이 동네에는 새롭고, 멋지고, 다양하고, 도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도 이 동네에서 뭐라도 하나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우리 동네 에세이 작가'인 것이다. 이렇게 근사한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에세이 작가가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이다.






* 참고 : 동인천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D%B8%EC%B2%9C%EC%97%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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