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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16. 2021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소비

초여름 나는 거실에 앉아 그곳에 가 있다.


"이번에는 어디 가나요?"


지인들이 내게 자주 묻는 말이다. 동네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면 머리 위로 투명한 지도가 펼쳐진다. 나는 평소 눈여겨보았던 카페나 새로 생긴 서점 등을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동네에서만 갈 수 있는 개성 있는 공간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임무가 되었다.


나는 야심 차게 준비한 메뉴를 공개하듯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리 찾아둔 장소의 링크를 공유한다. 지인들은 가기도 전에 마음에 든다며 기대하는 눈치다. 적당한 호응에 어깨가 살짝 솟아오른다. 익숙한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장소, 그곳에서 느끼는 생경한 기분,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생뚱맞은 장소에 생긴 독립 서점이나 빈티지한 카페는 그 자리에서 주변과 어우러기지 전까지 많은 시간을 견딘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풍경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그 자리를 버텨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순간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저기 괜찮았는데 아쉽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쓸데없는 오지랖과 소비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예외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나는 '지키기 위한 소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예전에는 좋은 작품이 있어도, 장소가 있어도, 그 순간만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무리하지 않는, 가능한 선에서 주저 없이 소비한다. 그래야 계속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그 공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소비를 지향한다.


사실 이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는 흔히 '인스타 갬성'에 적합한 곳이 많다. 나와 음식 사진이 잘 나오는 카페가 많다. 실제로 맛있고, 멋진 공간이 어우러진 공간도 존재한다. 다만 동네 주민으로서 이용하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다. 가끔 갈 수는 있어도 애용할 수는 없는 가격이다.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개인 카페를 즐기고 싶은데 적당한 카페를 찾는 일은 힘들다.


 



한 달 전쯤 처음 가게 된 카페는 몇 년 전부터 그저 지나치기만 한 곳이었다. 사실 이 동네에는 개인 카페, 프랜차이즈 카페 할 것 없이, 카페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요즘 그곳을 자주 애용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소금 커피'가 정말 맛있다. 처음에는 빨대를 꽂지 않고 입술을 대고 마신다. 입안으로 짜고 단 맛이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이게 뭐지 하면서 절반 정도 마시고 나면, 진하고 부드러운 커피가 빨대를 통해 내 기분으로 흡수된다. 소금 커피의 가격은 오천 원이다. 오천 원을 내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내겐 완벽한 커피다. 이 카페에서 파는 식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접해왔던 '브런치'는 보통 양은 부족하지만 가격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즐기고자 하는 건 보기 좋은 음식이 아니다. 예쁘게 세팅된 음식을 보기 위해 한 두 번은 그곳에 갈 수 있지만 결국 오래 버텨내기 위해서는 맛과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평소 이런 생각을 자주 해왔던 내게 소금 커피가 맛있는 그 카페는 정말 지키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내가 원했던 메뉴와 가격이면서 분위기도 깔끔하다. 카페 1층 한쪽 벽면에는 시집과 독립 출판물이 전면으로 손님을 반긴다. 낡은 피아노 위에는 오래된 휴대폰들이 줄지어 있다. 2층에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단독 공간과 더불어 라탄 소품, 빈티지 컵, 흔치 않은 디자인의 엽서와 포스터 등이 전시돼 있다. 내가 계속 그 카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곳이 존재해야 한다. 그곳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소비해야 한다. 카페 사장님은 인스타를 통해 자신의 카페가 지역 찐 동네 사람들만 아는 커피집, 브런치 가게가 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나는 늘 지켜만 봐오다가 용기를 내어 댓글을 달았다.


"지역 주민으로서 응원합니다."


이 동네의 인싸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이 동네에 사는 동안만큼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공간과 맛을 지키고 싶은 것뿐이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사장님이 댓글을 달아 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때로는 형식적으로 느껴지는 응원이나 답장이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될 때가 있다.


 



그곳 외에 동네에 있는 서점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면 더 싸게 구매할 수 있지만 일부러 그 독립서점에 들른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이다. 얼마 전, 매주 목요일 심야책방을 운영하는 그곳에 갔다. 고르고 골라 아이와 함께 책을 한 권씩 구매했다.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나는 책을 산다. 어쩌다 한 번 가면서 거창한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심야책방에서는 자신이 가져간 텀블러에 커피를 제공하며, 구매한 책을 그곳에서 읽을 수 있다. 아이는 '귤사람'이라는 책을 골라 놓고, 서점 중앙에 있는 피아노를 치느라 바쁘다. 나는 동네에 방해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다. 아이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나온 커피와 내가 고른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이 함께 놓여 그 순간을 빛낸다. 골목에 있는 서점이 얼마나 버티려나 싶었는데 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주는 모습이 때로는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어두운 밤하늘 쏟아져 내릴 듯이 빛나는 별처럼, 골목에서 혼자 환하게 빛나는 서점을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 잠시 바라보았다.




올해 초, 한 외국 경제학자가 TV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기적이기 위해서 이타적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눈앞의 이익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카페나 독립서점이 잘 되길 응원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위해서다. 언젠가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지만 현재로써는 무조건 응원이다.


여름이 시작되었다. 지인들과 약속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갈 수 있는 카페, 선물해야 할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떠오르는 잡화점, 메뉴에 따라 떠오르는 동네의 대표 맛집, 초여름의 날씨를 가득 담은 동네 공원의 산책길을 떠올려 본다. 꽤 유명한 모밀국수 가게 앞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 시장 골목에 있는 칼국수집 식탁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제비 한 그릇,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 자리한 한옥 카페 마당에서 바라보는 하늘, 아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기자기한 상점, 그곳들에도 여름 공기가 찾아왔겠지, 거실에 앉아 나는 그곳에 가있다.


초여름 시원한 바람이 나를 부른다. 동네 어디를 갈까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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