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젼정 Jul 16. 2021

옆집 할머니의 이사

언젠가는 모두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초등학생인 아이의 등교 시간, 문을 열고 나갔더니 옆집 현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옆집 할머니의 이사는. 아이는 습관처럼 그 앞을 서성거린다. 서성거리는 아이를 발견한 여자분이 나와 우리에게 말을 건다.


"고마워요. 엄마랑 잘 지내주셔서."


할머니의 다섯 명의 딸 중 한 분인 것 같았다. 할머니의 인자한 마음이 그분의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할머니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고, 그중 두 명은 미국에 산다고 했다. 자식 모두 대학에 보냈고, 잘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셔서 나도 알고 있었다. 자식이 다섯이나 있어도 할머니는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말도. 할머니는 노인보행기를 끌고 아파트 주변을 자주 산책하셨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노인들의 시간은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간다.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자식들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간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이거라도."


괜찮다고 하면서 할머니 딸이 준 커피믹스를 어정쩡한 자세로 건네받았다. 뭐라도 우리에게 주고 싶어 이삿짐에서 꺼낸 커피믹스였다. 할머니는 병원에 가셔서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경찰 나무 펜던트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경찰 펜던트가 할머니를 지켜줄 거라며, 아이는 그것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싶어 했다.


할머니의 딸들보다 우리는 할머니를 더 자주 만났다. 할머니가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날이면, 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할머니네 현관에 서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아이고, 예뻐! 할머니가 뭐 줄까?"


할머니의 다정한 말투에 아이의 입꼬리는 자동으로 올라갔다. 과자와 사탕, 요구르트를 아이의 손에 쥐어주면서 할머니는 활짝 열린 문처럼 마음이 보이게 웃었다. 아이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나서도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집에 돌아가기 아쉬운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한 번은 내가 샌드위치를 넉넉히 만들어서 나눠드렸더니, 다음날 아침 할머니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아침 안 먹었지? 한번 먹어봐."


햄과 야채를 넣은 볶음밥, 그 위에 동그랗게 놓인 계란 프라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허리를 손으로 짚고 겨우 서 있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더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볶음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밥 생각이 없었는데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그 볶음밥에서는 할머니네 집 냄새가 났다. 그리 달가운 냄새는 아니었다. 끈적한 기분이 느껴지는 주방에서 만든 볶음밥은 분명 내 취향은 아니었다. 다만 그 볶음밥의 맛은 취향과 상관없이 맛있었다. 때로는 맛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음식이 있다. 어떤 맛이었는지 보다 어떤 기분이었는지로 설명되는, 그런 음식 말이다.






옆집 할머니의 이삿날을 알게 된 아이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아이는 편지에 ‘할머니의 이름을 알려주세요’라고 썼다. 4년을 알고 지냈는데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편지를 드리려고 문을 몇 번 두드렸는데 할머니는 그때마다 집에 안 계셨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러다 이사를 가시면 편지를 전해드릴 수 없으니 말이다. 집에 있는 음료수와 내가 뜬 수세미, 아이가 쓴 편지를 비닐봉지에 넣어 할머니네 집 문고리에 매달아 놓았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할머니와 만날 수 있었다. 옆집 할머니는 집에 들어가는 우리를 멈춰 세웠다. 편지를 잘 보았다면서 답장과 함께 간식을 주셨다. 집에 있는 가장 맛있는 것들을 모아 주신 게 분명했다.


우리는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천천히, 자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옆집 할머니의 답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땅콩강정을 하나씩 깨물어 먹었다. 입안에 고소함이 가득 퍼졌다. '훌륭한 소녀가 되길 축복한다'는 할머니의 말은 아이의 마음 어딘가에 분명 남을 것이다. 아이의 편지에 저렇게 진심으로 답장을 해주시는 어른은 흔치 않다. 할머니가 자신의 딸들에게 어떤 엄마였을지 궁금해졌다.


옆집 할머니에게 받은 간식과 편지 (아이의 이름을 잘못 알고 계셨다.)



사실 할머니가 이사를 가신다고 해서 영영 만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아쉬워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신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으로. 가깝지만 분명 꽤 먼 거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아이가 하교하면 할머니가 이사 간 집에 같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할머니의 딸이 알려준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종이에 적어두었다.


그냥 가기는 아쉬워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케이크 두 조각을 샀다. 케이크를 들고 가면서 생각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같이 밥 한 끼 먹은 적 없는 사이에, 깊은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사이에, 무슨 정이 이렇게 들었을까. 따지고 보면 집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신 적이 없는 낯선 사이다.


할머트*에 계신 옆집 할머니에게 아이가 스스럼없이 다가가면 다른 할머니들은 이렇게 묻는다.


"손녀야?"


옆집 할머니는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라면서, 자랑스럽게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교 앞에서 아이를 만나 가방을 멘 채로 할머니가 이사한 집으로 향했다. 이사 사다리 차가 보이는 걸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사 중이라 현관문이 열려있다. 할머니는 아직도 밖에 계신 모양이다. 아까 만났던 할머니 딸에게 인사를 하고 케이크를 전했다. 이사 간 집은 전에 사셨던 집보다 더 깨끗하고 좋아 보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할머니는 결국 그날 오후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인 홈플러스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를 나누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옆집 할머니가 이사한지도 넉 달이 지났다. 예전처럼 할머니를 자주 만날 수 없다. 옆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다. 문 앞에 있었던 할머니의 노인보행기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의 집이 어디인지 알지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우리와 할머니 사이는 그런 거리감으로 유지되어 왔으니, 이제 와서 그 거리를 좁히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할머트'라고 부르는 곳에 가면 이따금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옆집 할머니를 발견하는 순간, 아이는 할머니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다. 여전히 할머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때 옆집에 살아서 좋았다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작별 인사가 충분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옆집 할머니가 이사 갔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진다. 옆집 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경찰 펜던트가 책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언젠가 전해드릴 날이 있을까.


얕은 사이에도 시간이 쌓이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정이 깃든다. 언젠가는 모두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이 시간은 언제나 아쉽다.


올해 봄, 옆집 할머니가 이사를 가셨다. 이사를 가셨어도 우리에게 그녀는 언제나 옆집 할머니다.


옆집 할머니, 이사 간 집에서도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 할머트 - '할머니'들의 '아지트'의 합성어 (아이가 만든 신조어), 아파트 단지 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아이가 만든 말.

작가의 이전글 기회는 어디에서 올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