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정 Dec 13. 2021

귀여움을 곁에 두어야지

아무 이유 없이 응원했던 마음을 갑자기 돌려받고 싶다.

귀엽지 못한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사는 게 마냥 좋기만 할 수는 없어, 그냥 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 그렇게 외면하려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꼼짝없이 귀여움과 멀어진 생각 한가운데에 갇힌다. 


드디어 내가 참여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책 표지에 있는 '행복'이라는 명사처럼 나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책이 나오기 전날,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자고 일어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책이 나왔다고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전에 한번 그 소식을 알렸기 때문인지 내 기대와는 달리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애초에 지인들에게 책을 사지 않아도 좋으니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거나 그냥 내게 이런 일이 있으니 알아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대로 착각했다. 축하한다는 텍스트가 있었음에도, 이상할 만큼 서운한 감정이 점점 커졌다. 


만 육천 원. 나와 그들 사이에 쓸쓸하게 놓인 계산기. 


인스타그램에도 책 출간 소식을 알렸다. 언제나 '좋아요'를 눌러주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공간에서 대체로 지갑을 여는 쪽이었다. 동네 카페, 식당에 드나들며 그곳들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글에는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다정한 말을 남겼다. 물론 내가 무엇을 바라고 그들을 응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내가 이뤄낸 작은 결과를 축하받고 싶었다. 

그들이 내게 지갑을 열어주지 않는다 해도, '좋아요'나 축하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싶었다. 아무 이유 없이 응원했던 마음을 갑자기 돌려받고 싶어진 내 마음이 너무 후져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는 너무 공평하지 못한 몰입을 상대에게 제공한 것이 아니었을까.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말해준 것들이 사실은 무의미했던 게 아닐까. 그것이 내게는 유의미한가. 

별 거 아닌 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특별한 일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내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말로는 상대에게 책을 사지 않아도 괜찮으니 알아달라고 했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너무 대단한 것을 바랐다.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싶다.

언제나 지갑을 여는 쪽인 사람은 의외로 관계 정리가 쉽다. 지갑을 닫으면 그만이다. 많이 주고, 덜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건 꼭 돈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서운한 마음을 몸에 지니고 있는 건 불편하다. 상대에게 미수금을 받아내려는 사람처럼 구는 모습을 갖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갖고 싶은 것만 가질 수 있겠는가. 팔로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팔로우 숫자를 줄이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덜 주고 많이 받는 삶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다. 


이 서운한 감정은 귀여움과 거리가 멀다. 그렇게 귀여움에서 멀어지는 마음이 싫다. 내가 귀여운 존재들을 사랑했던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 아닐까. 귀여운 것들은 정처 없이 흔들리는 나를 지켜줄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오늘은 귀여움을 곁에 두어야지.

멀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옆집 할머니의 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