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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pr 11. 2022

동네서점 단골손님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품고 그곳에 간다.

동네에 자주 가는 서점이 있다. 작년 여름쯤 알게 된 곳이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그리 가까운 것도 아니고, 서점 사장님이 살갑게 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나는 자꾸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책인데 그곳에서 사면 색다른 기분이 든다.


왜일까.


왜 하필 그곳일까.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동네 서점이 많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도 있고, 도보 20분 거리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멀리 있는 그곳을 애용한다. 사장님과 친해서? 책이 더 많아서? 인테리어가 멋져서? 아니다. 그냥 끌리는 것이다. 꼭 이유를 찾자면 서점 사장님이 지나치게 솔직한 스타일이라는 것 정도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특유의 분위기가 그곳 사장님에게는 없다. 어려운 설명도, 그럴듯한 말들도 없다. 나는 그곳에서 서점 자영업자의 치열한 삶을 엿본다. 그 삶을 포장하지 않고 내놓는 장소의 분위기를 읽는다. 

주변에 동네 주민과 함께 가게를 꾸려가고 싶다고 말하는 가게는 많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대로 요즘 트렌트에 맞는 인테리어와 음식 메뉴를 내세워서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는 너무 많다. 한두 번 가면 동네 주민은 알 수 있다. 그 가게가 동네와 어우러지고 싶은 것인지,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인지. 물론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내세우는 가치와 행동이 어긋날 때 우리는 불편해진다. 그 미묘한 기류를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읽는다. 동네서점 사장님은 책이 잘 팔리지 않으면 힘들어한다. 그러면서도 동네 이웃들, 단골손님들과 서점을 함께 꾸려가려고 노력한다. 책을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말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힘이다. 동네서점을 좋아한다면, 동네서점에서 책을 구매해야 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다음 글을 위해 책을 구매해서 읽어야 한다. 내 지갑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형서점을 아예 이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 또한 대형서점을 이용할 때가 있다. 


동네서점 단골손님이 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따뜻한 분위기가 상상되지 않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해도 상상은 언제나 자유다. 동네서점에 드나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봄날의 볕은 따스하고, 바다의 윤슬처럼 바람이 일렁인다. 일렁이는 것이 마음인지, 귓등에 걸친 머리카락인지 분간해내기가 어렵다. 책을 넣을 뜨개 가방이 공중에서 춤을 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온몸으로 관찰한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이라는 노래가 재생된다. 휴대폰 블루투스를 연결하듯 책의 세계로 진입한다. 시처럼 느껴지는 가사, 익숙한 풍경, 피부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바람, 익숙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투명한 보호막처럼 나를 감싼다. 나는 내가 된다. 내가 되고자 하지 않아도, 그 순간 내가 된다. 그렇게 20분쯤 걷다 보면, 묘하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도착해야 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목적지에 다다르면 그렇게 된다. 10분은 더 가야 도착이다. 서점 간판이 보인다. 눈앞에 서점이 보이면 일정한 속도를 조절하기 힘들어진다.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경쾌하게 흔들린다. 책 냄새와 디퓨저 냄새가 코끝에 와닿는다. 책의 세계, 장소가 전환되었다. 어색한 인사와 함께 잠시 정적이 흐른다. 사방이 책이다. 나는 도착하면 항상 왼쪽 책장 '문학 중매점' 코너부터 확인한다. '문학 중매점'은 '독자와 독자를 책으로 연결하는 곳'이다. 코너 속의 코너처럼 서점 안의 서점이다. 사장님은 손님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손님들은 자신의 세계를 그 공간에 꽂는다. 동네서점이기에 할 수 있는 기획이며, 그곳의 손님이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다. 나도 문학 중매점에 참여하고 있다. 책은 전부 서점 사장님이 구매한다. 판매 수익도 사장님의 몫이다. 그럼에도 참여자들은 자신의 공간을 정성껏 꾸민다. 나도 뜨개 식빵 수세미, 뜨개 트리 등을 선물로 내걸고, 내 책장을 열심히 홍보했다. 요즘은 책만 덩그러니 꽂혀있지만 말이다.

서점 한 칸에 내 공간이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인 경험이다. 이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마저도 책을 통해 알고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들을 나는 그곳에 꽂아두었다.


한 번은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손님들이 많이 와서 소파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남녀 손님이 함께 들어와 문학 중매점 책장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집게손가락으로 책을 가리키며 '이 책 진짜 재미있게 읽었는데!'라고 말했다. 재회한 책에 대한 반가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떤 책이요? 이거 제가 참여한 건데!"


나는 구부러진 몸을 살짝 피면서 낯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집게손가락을 더 정확히 가리켰다. 그 책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라는 소설이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내가 실례되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반가워서 모르는 사람한테 넉살 좋게 말을 걸었을까. 평소의 나를 벗어나는 행동이다. 피식, 어색한 웃음이 마스크 속에 숨었다.


우리는 얼마나 이해받고 싶어 하는가.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맥락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이해받고 싶어서,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책을 읽는 경우도 많다. 이해받으면 존중받게 된다. 존중받으면 존중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존중을 신뢰하면 이해하고 싶어 진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문학 소매점 책갈피 - 제가 좋아하는 책 문구를 보내드렸더니 만들어 주셨어요. 책을 구매하면 책갈피를 끼워 준답니다.

나는 동네 서점의 단골손님이다. 나는 그곳을 오가며 나의 세계를 키워나간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품고 그곳에 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나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그곳에는 책과 사람이 있어요. 반대로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눈여겨보지 않는다면요


약간의 용기를 내어 동네서점의 단골손님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어색한 인사와 함께 서점으로 들어간 새로운 바람과 손님들을 상상해본다. 그곳을 오가며 보았던 풍경, 몸의 움직임이 내게 말을 건다. 딸랑. 나는 당신의 등을 본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당신도 찾길 바란다. 




* 일부러 서점 내부 사진은 넣지 않았어요. 상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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