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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r 14. 2022

아파트, 이웃도 옵션으로 넣어주세요.

좋은 아파트 보다 좋은 이웃

옆집 할머니가 이사를 가신 지도 거의 일 년이 되어 간다. 아주 가끔 옆집 할머니를 할머트*에서 만난다. 잘 지내시냐고 인사를 하면 그때가 좋았다며 말끝에 아쉬움을 남기신다. 우리 역시 그렇다. 새로 이사 온 옆집 이웃과는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삿날 시루떡을 주시는 할머니는 자신과 아들 둘이 함께 산다고 했기에 그런 줄만 알고 있다. 아파트는 정말 이웃이 중요한 것 같다. 베란다 확장이나 리모델링, 그런 것보다 이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옆집 할머니가 문을 종종 열어놓으면 아이가 신나서 그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기분이 씁쓸해진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 그 집과 이웃까지 다른 온기를 품으며 살게 된다. 집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웃이 바뀌고 달라진 것들

1. 옆집 이웃은 문을 세게 닫는다.

2. 불편한 생활 소음이 많아졌다.

3. 집에 들어갈 때 옆집 이웃과 마주치지 않길 바란다.


옆집 이웃에게 가장 불만인 건 현관문을 닫을 때 늘 '쾅' 소리가 난다는 부분이다. 문을 닫을 때 살짝 잡아주기만 해도 그런 소리가 나지 않을 텐데 옆집 이웃은 문을 열기만 하고 항상 내버려 둔다. 그럼 문은 당연히 '쾅' 닫힌다. 그럼 옆집 이웃의 외출과 귀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런 소리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특히 밤늦게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나기라도 하면 나는 미리 손바닥으로 귀를 막는다.


쾅.


아파트 생활이란 이런 것인가. 이웃의 고약한 습관을 고치려고 하다가 더 불편한 일이 생길까 봐 나는 그저 참고 있다. 가끔은 글을 쓰면서 옆집 수도요금이 올라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던데 다행히 여긴 그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게 애써 위안한다. 이건 분명 옆집 할머니가 계실 때는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이었다. 아파트라는 공동체 생활에서 이 정도 불편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수준이 맞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바뀐 이웃으로 인해 생긴 변화를 불편해하고 있다.


외출을 할 때나 귀가를 할 때, 나는 옆집 이웃과 마주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늘 빈다. 마주쳐서 불필요한 인사를 하고 싶지 않고, 얼굴을 아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다. 몇 번 옆집에 사는 이웃과 우연히 마주쳐서 가볍게 인사를 한 적은 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옆집 아저씨는 제법 큰 키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신발을 고쳐 신으며 나와 아이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힘주어 인사를 했다. 나는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아이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형식적으로 말했다. 너무 반가워 보여서도 안 되고, 너무 퉁명스러워 보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계단을 내려왔다. 그 이후로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저씨가 누군가와 싸우는 것처럼 계속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다. 누가 민원을 넣었는지 경비 아저씨가 찾아와 주의를 주었더니 옆집 아저씨는 자신은 그런 적이 절대 없다면서 도리어 민원을 넣은 집이 어디냐며 따져 물었다. 흥분한 옆집 아저씨를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비 아저씨는 한발 물러섰고, 그 모습에 옆집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 나는 거실에서 그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우리가 민원을 넣었다고 옆집 아저씨가 오해할까 봐 두려웠다. 옆집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면 나는 마음이 불편하게 쿵쾅거린다. 불행을 견딜 수 없어 어디에라도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은 옆집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파트를   이웃을 고를  있게 옵션으로 넣어준다면 나는 당연히 옆집 할머니가 계신 집을 고를 것이다. 돈을 조금  줘야 한다 해도 말이다. 좋은 아파트 보다 좋은 이웃이 내겐  중요하다. 아파트를   이웃을 고를  있는 옵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다음에 이사를 하게 되면 주택을 고려해 봐야겠다. 주택에도 이웃은 있겠지만 아파트보다 많은 것들을 공유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 할머트 - '할머니'들의 '아지트'의 합성어 (아이가 만든 신조어), 아파트 단지 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아이가 만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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