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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r 07. 2022

이상한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나중에 늙으면 시골에 살고 싶다.


어릴 때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한가롭고, 조용한 마을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역시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장면을 위해 견뎌야 할 수많은 불편함을 나는 안다. 물론 그 불편함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만족감이 더 높은 사람들도 분명 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도시에 살고 있으므로 시골살이에 대한 향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마음대로 만든 환상은 있었다. 시부모님의 삶을 지켜보면서 시골살이의 불편함을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사시는 곳에는 제대로 된 병원 하나가 없다. 병원에 가려면 한 시간에 한대 다니는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를 한 대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다. 대학병원에 가는 날에는 거기서 또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갈아타고 내려서 또 택시를 타야 대학병원에 도착한다. 아버님이 건강상의 문제로 운전을 못하시게 되면서 병원 가는 건 그야말로 일이 되었다. 

시골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데 자식이 가까이 사는 경우는 드물다. 아프면 그야말로 비상이다.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과 계곡을 마음껏 볼 수 있고, 거기서 나는 나물을 뜯어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시골의 사계절은 인위적으로 반짝이는 도시보다 분명 더 아름답다.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써내도 살아있는 자연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드넓게 펼쳐지는 초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작은 점일 뿐이다. 


시골은 어떤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금방 소문이 난다. 일부러 소문을 낸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모양새다. 공동체 생활을 잘하지 못하면 남의 입에 오르내릴 확률도 높아진다. 물론 도시에서도 어떤 그룹에 속하면 흔히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시골에 비해서 슬쩍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빠지기가 쉽다. 

산속 깊은 곳에 혼자 사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누군가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나는 애초에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살짝 촌스러운) 도시에 사는 삶이 좋다. 자본주의의 맛이 느껴지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언제부터 그런 걸 마셨다고), 다양한 빛깔의 실이 들어있는 검정 봉지를 공중에 흔들며 돌아오는, 그런 익숙한 즐거움이 좋다.




도시는 숨어 지내기 편리하다.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나름의 익명성이 보장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 삶이 삭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내가 간섭받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하고,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사람을 가려서 만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곳이 알려지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공포심도 한몫한다. 그 공포는 뉴스와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토대로 뻗어나간 상상이 기초가 되었다. 겁이 많은 나는 어쩐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지 않는다. 

세월의 촌스러움과 인위적인 세련스러움이 공존하는 도시에 사는 나는 어디를 갔다가도 이 도시와 가까워지면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시골에서 보았던 풍경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나와 다른 장소에서 그곳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 존재한다. 도시에 있을 때 시골의 풍경이 생경해지는 것처럼, 시골에 있을 때는 도시의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도시에 사는 나는 자주 시골 풍경을 잊는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이 드넓은 세상을 습관처럼 비좁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주 놀라곤 한다. 

 

나중에 늙어도 도시에 살고 싶다. 


나는 도시에 잘 숨었다고 안도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나를 드러낸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어디쯤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 것들을 나 스스로 적어 올린다. 누군가 나를 찾아내길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가 술래이면서 시시때때로 숨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숨어 있으면서 결국 발견되길 바라는 이상한 숨바꼭질을 말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도시의 숨바꼭질에 참여한 사람들은 늘 손이 바쁘다. 나도 바쁘게 손을 움직여 본다. 숨바꼭질은 날이 저물어도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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