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른 단어를 쓰고 있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는 그래서 생긴다.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수많은 단어가 존재한다. 너무 다른 단어를 쓰는 관계에서는 오해가 생긴다. 우리는 '꽃'을 '꽃'이라 부르지만 모두가 부르는 꽃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각자 마음에 심어 놓은 꽃의 이미지와 색이 '꽃'이라는 그 단어에 담겨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꽃을 말하고 있다. 대낮의 꽃은 볕과 함께 어우러져 찬란하게 느껴지지만 밤의 꽃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꽃을 꽃이라고 단순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꽃이 꽃으로 존재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설명은 타인이 가진 단어와는 확연히 다른 단어가 아닐까. 실은 단어는 고유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의 고유한 단어를 누군가는 알아들을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단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모든 단어에는 사연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단어를 배우고, 말한다. 때로는 배운 단어를 다시 배우기도 한다. 그 단어를 통해 우리는 상대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단어에는 개인의 사유가 담길 수밖에 없다. '집'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보겠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어떤 사람에게 '집'은 포근하고 아늑한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 '집'은 답답하고 우울한 느낌일 수도 있다. 사전적 의미의 '집'은 같지만 마음의 단어를 끄집어내면 모두에게 '집'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집을 한평생 소유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집은 갈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집은 불편한 공간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내뱉는 단어에는 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진 마음의 단어를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익숙한 단어에 담긴 각자의 기억을 함께 기록해보면 어떨까. 단어를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려 보기도 하고, 단어를 시원한 맥주처럼 마셔보기도 하고, 단어를 민들레 홀씨처럼 공중에서 후후 불어보기도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 끝에 나는 수첩을 들고, 단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 여행에서 우리가 우연히라도 마주치기를 나는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