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나의 일상에도 특별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내가 찾지 못한 비밀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지 않을까.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스즈메(우에노 주리)는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맹탕 같은 삶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즈메는 100개의 계단 난관에서 ‘스파이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스즈메는 그렇게 얼렁뚱땅 스파이가 된다. 어중간하고 평범한 스즈메의 스파이 활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소와 사람들, 말들에서 스즈메는 특이사항을 발견한다. 이상하게도 스파이 활동을 하면 할수록 스즈메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인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 스즈메는 스파이 활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단조로운 삶은 다채로워지고 별 거 아닌 일들은 흥미로워진다. 라면 가게에 모인 스파이 멤버들이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어쩌다 들러서 먹을 만한 어쩌다 먹는 맛은 어려운 거지. _ 라면집 아저씨
라멘집 아저씨가 준 메모는 내가 좋아하는 어중간한 맛 레시피였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만들어 보니 어중간한 맛이 나서 왠지 눈물이 났다. _ 스즈메
라면집 아저씨 또한 스파이이기 때문에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맛’의 라면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부분이 처음에는 좀 코믹하게 느껴졌다. 라면집이 유명해지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해 맛있는 라면을 만들 줄 알면서도 어중간한 라면을 만들어 내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어중간 맛’이 무엇을 뜻할까. 평범한 일상이 ‘스파이’가 된 이후 특별해지는 이유는 뭘까. 결국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어떤 이유로 특별 해지는지에 대한 질문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산다. 유명한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평범한 것이 좋은 것인지 별로인 것인지 정확히 판가름하기도 어렵다. 일반 사람들은 평범한 삶에서 일탈을 꿈꾸고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고, 흔히 그런 말을 하곤 한다.
라면집 아저씨가 어중간한 맛의 라면을 만들었던 건 맛있는 라면을 끓일 줄 몰라서가 아니다. 맛있는 라면을 끓여도 되는 때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는 맛의 라면을 만들어 파는 것, 그것은 성실함을 연습하는 것이다. 일부러 그런 맛을 내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을 그렇게 가슴 벅차게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가 삶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반짝이는 무엇이 아니라 반짝이는 무엇의 이면일 지도 모른다. 그 이면을 잘 살아내야 한다.
별거 없을 것 같은 일상에도 여러 뒷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_ 스즈메
영화 속에서 스즈메에게 가장 큰 변화를 준 건 ‘스파이’라는 책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스즈메에게 영향을 준 건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이었다. 스파이가 된 스즈메는 일상을 '조금' 다르게 산다. 익숙한 장소에서 발견하는 특별한 일들이 스즈메의 삶에 큰 변화를 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쩌면 특별함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 마음가짐 그런 게 아닐까.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말은 이제 그리 신선하지도 않다. 유통기한이 지난 문장처럼 그 말에는 힘이 없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평범한 일상을 다룬 일본 영화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본 건 확실한데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놀랐다. 영화는 분명 그대로인데 내가 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스즈메처럼 스파이가 된 걸까. 어중간하고 평범한 나의 삶이 ‘스파이’가 된 스즈메의 삶처럼 어느 날 특별해질 수 있을까. 글을 쓸 때만큼은 스파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라는 존재감이 없는 세계에 숨어 많은 것들을 몰래 지켜보고 말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실패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평범한 삶에서 권태와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마음에 시소를 태워준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고, 그 일상에 있는 뒷모습을 발견해 보라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오르락내리락 모든 것이 커졌다 작아졌다 달리 보인다. 평범하고 어중간한 삶도 충분히 의미 있다. 성공하지 않아도, 그다지 대단한 결말이 아니어도 괜찮다. 눈에 보이는 게 인생의 전부일 리 없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사랑한다고 쉽게 말한다. 어중간한 맛을 좋아한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과 비슷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측은 언제나 빗나간다. 스즈메가 ‘스파이’가 되고 발견 한 건 특별한 것의 위대함이 아니었다. ‘어중간한 맛’을 그리워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었다.
스즈메는 안다. 어중간한 라면의 맛이 얼마나 그립고 멋진 맛인지. 그리고 우리는 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요일 오후 봉지라면을 꺼내 물이 끓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으로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를. 동네 산책을 하다가 좋아하는 라면집에 들어가 먹게 되는 라면의 맛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우리는 이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