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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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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Dec 26. 2022

지망생

짧은 소설


진은 지망생이었다. 소설가 지망생인 진은 매일 글을 썼다. 정말 절절하게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는가. 진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진은 자신의 절실함을 수시로 확인했다. 마음은 늘 절실하다고 대답했다. 진은 자기 자신을 의심할만했다. 진은 글쓰기 말고 다른 일에 더 매달렸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뛰어난 재능도 없으면서 꿈을 걸고 도박을 하는 자기 자신이 형편없이 느껴져 견디기 힘들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반복했다. 진은 소설 쓰기 외에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이나 자격증을 따면 수입이 보장되는 그런 일(정말 그런 일이 있는가)에는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소설가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진은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진은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진은 소설 쓰기를 배운 적이 없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주 감탄하긴 했으나 그것이 배워서 되는 일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진은 산책을 하며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었다. 그 문장은 꽤 그럴듯하여 바로 종이에 옮겨 적으면 누구라도 감탄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휴대폰 메모장에 그 문장을 쓰거나 종이에 그 문장을 쓰려고 하면 그 확신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진이 만들어 낸 문장은 볼품없었다. 그렇기에 고칠 필요도 없었다. 삭제가 필요하지도 않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문장은 그런 식으로 자리를 차지하다가 정해진 수순처럼 잊혔다. 그럼에도 진은 자신이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 믿고 믿었다. 그것은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믿음이기도 했다. 그 믿음은 머릿속에서 만든 문장과 비슷했다. 자신이 쓴 소설과 그것이 가져다줄 미래는 꽤 그럴듯했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 있는 자신의 소설책, 더 이상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가의 앞날은 창창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몰려올 때마다 진은 마음의 풍족함을 느꼈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감으로 한껏 고무되었다.

소설가 지망생인 진의 하루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 부모가 일터로 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할 때 진은 겨우 눈을 떴다. 침대에 누워서 한참 방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은 자기 자신을 귀히 여겼다. 텅 빈 거실에 나가 전기포트의 스위치를 올리고 마실거리를 찾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진은 캡슐커피를 마셨다. 자신이 벌어놓은 돈으로 그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매달 빠져나가는 통신비와 캡슐 커피 가격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진은 퇴사하고 3년 안에 소설가가 될 것이라고 기간을 정해두었다. 3년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간이라고 믿었다.

1년 동안 진은 무작정 글을 썼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올렸다. 진의 글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 자리 조회수는 진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은 자신의 글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타인의 글을 찾아 읽고 댓글을 달았다. 글쓰기 플랫폼에서도 어떤 흐름을 주도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진은 자신이 그 무리에 낄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예감했다. 진의 글은 자신이 학교를 다닐 때 느꼈던 익숙한 소외감과 비슷했다. 그 소외감은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진은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니,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

진은 대체로 무뚝뚝한 얼굴로 상대를 대했다. 세상은 신기한 곳이었다. 그런 얼굴을 보며 웃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진은 그런 사람에게만 자신의 미소 관람을 허락했다. 운이 좋게도 진은 외톨이가 되지 않았다. 무리에서는 늘 이탈했지만 철저하게 혼자는 아니었다. 진의 곁에는 한두 명의 좋은 친구가 있었다. 진은 무리인 그들과 그들 외의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진이 구분하는 그들은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진의 이런 성향은 글쓰기 플랫폼에서도 나타났다. 진은 좀처럼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따스히 내밀어주길 원했다. 타인의 글을 읽지 않으면서 타인이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기다리면 가끔 어딘가 모르게 진과 비슷한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진은 기뻤다. 진은 그것으로 소설가가 되었다고 잠깐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진은 1년, 2년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 진의 곁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술 한잔 마음 편히 살 수 없게 된 진은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 했다. 괜찮다며 진을 불러내는 친구도 하나, 둘 사라졌다. 진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라면 참아야 하는 일이라고, 진은 믹스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생각했다.


글을 올리면 올릴수록 진은 황폐해졌다. 가지를 뻗으며 자라기를 원하는 식물에게 물을 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진은 분개했다. 부질없고 쓸모없는 분개였다. 진의 부모는 금요일 저녁이면 식탁에 앉아 진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진의 아빠는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고 엄마는 채워진 잔을 쏘아보며 그 질문에 자신의 궁금증을 덧입혔다. 진은 초등교육을 겨우 받은 부모가 자신을 이해할 리 없다고, 그런 그들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진은 난처한 상황에서 좀 이상하게 웃었다. 진의 그 웃음은 아빠의 웃음과 닮아 있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상의도 없이 친구나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추궁을 당할 때마다 그렇게 웃었다. 엄마가 아무것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 울기 시작하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등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렇게 웃었다. 엄마는 아빠의 그 표정을 보고 화를 냈고, 그 표정을 보고 화를 풀었다. 그 웃음에는 악의가 없었다. 곤란함이 느껴지는 선한 웃음은 결국 상대의 마음을 녹이는 데 성공한다. 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으로 그 사실을 보고 익혔다.


오후 2시,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점이 될 때까지 진은 가만히 서있었다. 점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진은 노트북 앞에 앉아 빈 화면에 마침표를 찍었다. 노트를 펼쳐 연필로 생각나는 말들을 적었다. 사라진 점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진은 그런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슬프게도 그런 것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점을 바라볼 때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문장은 점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 버렸다. 진은 그 사이에 놓인 자기 자신이 초라해 빈 화면에 점을 무수히 찍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진의 시간은 여름날 바다의 물결처럼 부드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은 늘 다른 공간으로 진을 데려다주었다.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고 싶었다. 진은 자신이 물결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이 물결처럼 이리로 저리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심심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번번이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상대의 퉁명스러운 반응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솔직한 것을 싫어했다. 솔직함에 담긴 어느 정도의 이기심까지 좋아할 여유가 없어서인지도 모른다고 진은 마음대로 상대를 오해했다. 진은 약간의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다.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의 삶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았다. 활기차고 생기 있는 삶은 아니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단조로울 거라고 오해받던 시간도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진은 책을 읽으면서 어디로든 갔고, 글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진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축복인 동시에 저주가 아닐까.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 진은 자주 고개를 가랑이 사이에 처박았다. 그럴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고개를 들기 전까지 진은 울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은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진은 비참한 감정을 마음의 발로 밟았다. 눈물은 무뎌졌다. 눈물은 정체를 감췄다.   

증명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을 그 무엇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컨트롤 제트를 눌러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까.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기 전으로 진은 수없이 달려가곤 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아무리 달려도 도착할 수 없는 곳을 향해 진은 끊임없이 몸을 기울였다. 진은 자기 자신을 믿는 동시에 의심했다. 자신의 재능과 성실을 테스트하기 위한 문제지를 만드느라 진은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진은 피로했다. 세상과 진은 미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미로는 눈앞에 보이는 세상만을 진실로 여겼다. 진은 출구를 찾기 위해 비슷한 길을 계속 걸어야 했다.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인 강과 진은 길에서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에 그런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진은 놀랐다. 강의 언변은 화려했다. 중소기업 영업팀 과장이라는 강은 초등학생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때와 비슷한 건 페이드 아웃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목구비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강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강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을 서열도 되지 않았다. 진이 반의 분위기를 이끄는 무리에 아예 끼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강은 늘 그 무리에 속하길 원해 보였다. 진은 그런 강이 좀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진이 소설가가 되려고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말에 강은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이라는 말 뒤에 붙은 수많은 ‘ㅋ’이 진의 이마에 와 부딪혔다. ‘소설가’라는 단어에 ‘유머’가 달라붙기라도 한 걸까. 진은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진은 후회했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강의 경박스러운 웃음소리에 진은 거리에서 발가 벗겨지고 있었다.


“소설가? 그걸로 뭘 하는데?”


강은 진심으로 웃겨했다. 최근 본 사람 중에 그렇게 최선을 다해 웃는 사람은 없었다. 강은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다가 쓰고 있던 금테 안경을 바닥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진은 바닥에 떨어진 강의 안경을 주워주려다가 말았다. 살짝 뻗었던 손을 주머니에 자연스럽게 집어넣었다. 강은 쭈그리고 앉아 안경을 주우면서도 웃었다. 웃다가 생긴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일어난 강을 살려 두어도 괜찮은가. 혹시 주머니에 총이 있었다면 진은 그것을 꺼냈을 것이다.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총을 꺼내기는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자연스럽게 주먹이 쥐어졌다. 주먹은 진의 잠바 주머니 안에 숨어 있었다. 그것을 꺼내 강의 입을 막아주면 내일까지 그를 미워하진 않아도 될 것이다. 진의 주먹이 주머니 밖으로 반쯤 나와 있었다.  


“아, 미안하다. 부러워서 그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꿈같은 일이잖아.”


주머니 속에 있던 잘 익은 주먹이 스르르 펴졌다. 강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자신이 과했다고 느낀 걸까. 진에 대한 부러움을 자각한 걸까. 사실상 둘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몰랐다.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들에 의존해 그 순간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탄력이 없었다. 손으로 뚝뚝 떼어내 사라져 버리는 수제비 반죽처럼 그들의 관계에는 이름이 없었다. 진은 수제비 그릇 밖으로 떠난 수제비 반죽이었다. 그 모습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강도를 달리할 뿐, 우스워 보일만 했다. 수제비 반죽이 수제비가 되지 않고 그럴싸해 보이긴 어려웠다. 그것이 수제비 반죽에게 놓인 현실이었다.   





강은 점심시간마다 혼자 카페로  소설을 썼다. 강이 쓰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이었다. 진은 지망생이었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럴 때마다 강은 진이 되었다. 강은 점심시간마다 진이라는 소설가 지망생이 되는 중소기업 영업팀 과장이었다. 강은 남몰래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강은 사무실로 돌아가기  화장실에 들려 얼굴을 바꿔 끼웠다. 강은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얼굴을 사용했다. 집에 돌아가서야 다시 자신이 원하는 얼굴을 찾을  있었다. 강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낮에 쓰던 소설을 이어 썼다. 금테 안경이 열기에 녹는 것처럼 자꾸 흘러내렸다. 그러다 잠이 들면 강은 자신이 아침에 어떤 얼굴을  누구로 깨어날지   어 두려웠다. 모든  정말 꿈같았다.


강은 점심시간이면 진이 되었다. 진은 지망생이었다. 그는 늘 그러기를 바랐다. 강은 진이 되고 싶었다. 진의 기분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강은 진을 부러워했다. 둘의 관계에는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지망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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