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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pr 04. 2023

내 인생이 가장 중요해


내 인생이 가장 중요해.


맞는 말이다. 누구라도 그래야 한다. 자신의 인생이 먼저여야 한다. 가장 중요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 남편, 아내, 자식, 형제 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내어주고 살아가는 사람들. 실속 없이 늘 손해만 보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모를까. 자신의 인생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인생을 걸 만큼 누군가의 인생이 중요해질 수도 있을까. 내 인생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직 나를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존재하고 성장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부모를 원망했다. 그 원망의 형태는 모나고 질퍽거렸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살아 나가야만 될 운명을 예감하며 느낀 불안감에서 비롯된 원망 속에서 나는 자주 흔들렸다. 우습게도 그 원망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나를 위로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이건 내 탓이 아니라고, 그저 상황이 조금 좋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뿐이었을까.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비켜나 있었다. 그땐 그게 그들의 삶인 줄 알았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자신이 기대하던 인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전부인 시절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잃게 된 걸까.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럴 수 있는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알 것 같다는 것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잃었다는 표현은 틀렸다고, 우기고 싶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는 잃지 않았다. 다른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어느새 아이의 인생이 내 인생의 범주 안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까지 내어줄 수 있는 건 아이의 인생이 자신의 인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춘기인 나와 사소한 일로 부딪힐 때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아주 지 혼자 알아서 큰 줄 알아.‘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시시하게 느껴졌다. 궁지에 몰려 궁색한 말을 찾아 내놓은 것 같기도 했다. 할 말이 없으니까 또 저런 말을 하는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 말이 끝나면 지겨운 말싸움도 검정봉지에 아무렇게나 담긴 물건들처럼 마무리되곤 했다. 나는 내가 혼자 알아서 컸다고 믿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아니었다. 혼자 알아서 큰 게 아니었다. 수많은 것들을 부모에게 배웠고 받았다. 그 모든 것이 유용한지는 장담할 수 없겠으나 부모의 희생 없이 클 수는 없었다는 건 사실이다.


내 인생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사랑하게 된 대상들이 있다. 그래서 희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그 희생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희생이 내 인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고, 엑스트라도 있다. 인생이 드라마라면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배역을 맡았을까. 앞으로는 어떤 배역을 맡게 될까. 주연인 날도 있었을 것이고, 조연이나 엑스트라인 날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배역을 맞느냐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맡은 배역을 잘 해내는 일 아닐까 싶다. 남편과 연애를 하는 동안 우리는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가족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아이가 커가면서는 시트콤 또는 다른 장르로 변환되고 있다. 아이는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그려나갈 것이다. 내가 그 나이에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기꺼이 주인공의 부모가 되어줄 것이다. 내 부모가 나름대로의 최선과 희생을 내게 쏟은 것처럼.


부모에게 가졌던 원망이 갑자기 다 사라지거나 이해될 수는 없다. 다만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신의 인생만큼 중요해진 누군가의 인생을 사랑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의  모습을 말이다.


 인생이 가장 중요해.  인생에 포함된  나뿐만이 아니었다.   



* 그림 출처 : 1화를 그리고 데뷔 없이 은퇴한 남편이 그린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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