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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pr 22. 2023

우는 얼굴


1.

눈물이 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참는다. 울어도 되는 순간이 아닐 때 우는 건 잘못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울어도 되는 순간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자주 슬펐지만 남들 앞에서 많이 울지 않았던 건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습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이 울지 않았던 건 아니다. 혼자서는 많이 울었다. 나는 울음을 참아야 한다고 배웠다. 울면 자그마한 일도 크게 부풀어 올랐다. 울면 별 것도 아닌 일이 별일이 되었다. 우는 동안 얼굴은 엉망이 된다. 울어서 엉망이 된 얼굴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때면 나는 더 열심히 눈물을 참았다.

우는 것은 약해 보인다. 울고 있는 동안의 인간은 구의 형태로 변형돼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다. 그러다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견디고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 형태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다. 내면이 외부로 까발려지는 것만 같다.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고 나면 마음은 젖은 종이처럼 쓸모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 울고 나서 후련했던 경험보다 실컷 울고 나서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던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경우가 더 많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던 나는 여전히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어떤 형태로 일어서야 하는 건지, 설명하기 힘든 어려운 기분을 우는 얼굴에서 만나곤 했다.  


2.

그런 나여서였을까. 한번 울면 그칠 줄 모르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참 힘들었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울어야만 울음을 그쳤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내내 괴로웠다. 내게는 그 울음을 멈출 아무런 힘이 없었다.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짜증 섞인 말을 하면 아이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더 크게 오래 울었다. 나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나는 아이가 울기 시작할 때마다 긴장했다. 대체 언제 울음을 그칠까. 내가 또 뭘 잘못한 걸까. 역시 내 잘못이겠지. 아이의 우는 모습을 보며 울지 않고도 늘 함께 울었다. 그 울음에 담긴 건 아마도 끝없이 주어도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그리움 아니었을까. 원 없이 울고 나면 아이는 물기 어린 눈으로 이내 방긋 웃곤 했다. 그 시간을 견뎌내면 다른 시간이 왔다. 울음 끝이 긴 아이는 아이는 웃음 끝도 길었다. 한번 웃으면 웃음을 멈추는 것도 어려워했다. 참고 견디는 것을 몰랐던 시절의 아이는 그랬고, 나는 그런 과정을 섬세하게 헤아릴 줄 몰랐다.


3.

울지 않고도 울고 있는 얼굴을 나는 조금 안다. 평소와는 다르게 미세하게 움직이는 얼굴 근육, 손가락으로 눈 주위를 어색하게 쓸어내는 행동,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처럼 흔들리는 입술, 깊어진 호흡. 참고 견디는 것에 단련된 눈물은 쉽게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툭 건드리면 애써 참아온 울음이 터질 것임을 알기에 나는 그 얼굴을 모르는 척하곤 한다.


울지 않고도 울고 있는 그 얼굴이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울지 않게 도와줘. 내가 울 것 같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줘.


가끔은 눈물을 견디지 않고 내보내는 아이처럼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날은 울지 않고도 우는 얼굴을 보며 대신 울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참지 않고 견디지 않고, 그래도 된다고, 나를 바깥으로 슬쩍 내보낼 수 있을까. 우는 얼굴을 여전히 보이고 싶지 않다. 내가 쌓아온 형태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면하는 순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울지 않고도 우는 얼굴을 만나면 함께 울지 않고도 울어주고 싶다. 그 얼굴을 혼자 울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려고 하면 그땐 재미있는 이야기를 놓기도 하면서 울기만 하지 않고 웃기도 하고 싶다.


4.

울고 싶은 순간에 울 수 있다면, 참지 않고 눈물을 쏟아낼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가진 순수한 얼굴을 가끔 동경한다. 우는 얼굴이 평소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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