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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Dec 18. 2023

일상의 안녕


일상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하루다. 그런 일상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구분 지어지지 않는 일상, 매일을 열심히 살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은 일상. 그렇지만 사실 일상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다만 그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볼 시간이, 우리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일상은 어떻게 지켜지는 걸까. 무심코 나의 일상의 안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요일 오전. 모처럼 충분히 자고 일어나 함께 하는 아침 식사, 설거지는 자신이 해주겠다며 걱정 말라는 남편의 말들을 떠올리며 흐뭇해진 나의 마음, 집 앞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 함께 상의하며 고르는 먹을거리들,  엄마 아빠가 무엇을 사 왔나 장바구니를 살피는 아이의 설레는 손짓, 그것을 뒤로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간 남편, 어쩐지 추운 날씨에 혼자 다시 내보낸 게 미안해져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따라 나간 나의 발에 자연스럽게 신겨진 여름 슬리퍼, 그동안 장바구니에 담긴 것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은 것은 아이, 거실을 천천히 채우는 겨울의 짧은 햇살, 거실 전기장판 위에 모여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 오후 출근을 위해 안방에서 말도 없이 잠을 청한 남편, 뭘 만드는지 하루종일 바쁜 아이, 아이에게 뭔가 만들어주기로 결심해 비장해진 나의 손가락, 냉동 식빵을 미리 꺼내 놓고 뜨개를 시작한 나와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아이, 적당한 소음과 적절한 온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틀어 놓은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만화 영화, 어느새 지나가버린 오전. sns에 남기는 지나간 어제,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간식을 챙기는 나의 머릿속은 무엇부터 해야 할지에 대한 순서를 정하는데 집중되고, 해동된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며 분주해진 순간, 남편은 겨우 잠에서 깨 정신을 차리고, 아이는 식탁에 놓인 누텔라 유리병을 보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눈치고, 탁 소리와 함께 구워진 식빵, 접시에 담긴 스누피 그림이 박힌 식빵과 앙증맞은 그릇에 담긴 누텔라, 그 옆에 놓인 핸드드립 커피와 빈 잔, 식탁 앞에 다시 모인 우리 세 사람. 식빵에 누텔라를 바르고 컵에 커피와 우유를 따르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들. 남편은 출근을 나서고 이어서 정리되는 식탁, 상큼한 향이 나는 인센스를 하나 켜두고 하나씩 열리는 방과 베란다의 창문,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아이는 시선을 tv에 고정시킨 채 춥다는 소리를 반복하고, 나는 얼마 전부터 거슬렸던 전신거울에 유리 전용 세정액을 뿌려 닦으며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청소가 마무리되고 창문을 닫으며 환기를 시킬 수 있는 공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에 있으면서도 할 일이 이토록 많다니 새삼스럽게 신기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해왔던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일상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닐까, 반문했다. 그렇다면 일상을 지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자답했다.


우리는 결국에는 다시 더러워질 것을 알면서도 청소를 한다. 요리를 해 먹으면 시켜 먹는 것보다 수고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리의 과정에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미루면 나 아닌 누군가가 그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돕는다. 내일이면 또 씻어야겠지만 오늘의 나를 위해 깨끗하게 몸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존재를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그렇게 함께 한 순간을 어딘가에 기록하며 일상이 유지되고 있음에 안도한다. 그런 행위들은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지킨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의 안녕을 위해 애쓴다. 때로는 일상이 거저 얻어지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실감하게 된다. 일요일 오전, 나와 우리의 일상은 꽤 안녕했다.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 다정하게 느껴질 때, 아주 사소하게 지켜지는 것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살아있다고 느끼고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일상은, 지키고 싶었던 일상은 대체로 이런 하루였던 것 같다. 서로에게 다정한 일상, 나에게 친절한 일상, 상대에게 따뜻한 말과 행동을 건넬 수 있는 일상, 그런 일상의 안녕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어떤 하루의 저녁, 나는 당신이 오늘 지킨 일상의 안녕을 묻고 싶다.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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