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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Nov 02. 2023

소설 같은 하루


감정의 열기가 식기 전 지난 일요일 마주했던 순간에 대해 기록해보려 한다. 그날은 아이와 둘이서 인천아트플랫폼에 갔다. 앞서 신청한 프로그램 참여를 마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떤 화면 앞에서 우리는 발길을 멈췄다. 포스터에 적힌 ‘오마카세’와 화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벨을 누르면 음악을 요리해 준다는 문구도 흥미로웠다. 나와 아이는 벨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몰래카메라의 참여자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우리는 결정해야 했다. 벨을 누르면 다음 곡이 랜덤으로 연주되는 건가. 벨을 누르면 녹화해 둔 화면이 바뀌는 건가. 궁금했다. 아이가 벨을 눌렀고, 화면에서 ‘2층으로 천천히 올라와 주시면 됩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근처에 서 있던 여자가 자신을 따라가면 된다면서 우리를 안내했다. 여자는 흔들림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와 아이의 놀란 기색에 전혀 동요치 않는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하루네!”



앞서 계단을 오르는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2층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가수와 연주자 2명이 있었다. 촬영하는 사람과 스텝도 몇 명 있었던 것 같고. 가수는 내게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오락가락합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럴 때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냐고 묻길래 혼자 있거나 책을 읽거나 그러고 싶은데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쉽지는 않다고 했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체험’을 읽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인상적인 구절을 물을 때 찍어둔 문장을 읽어볼까 하다가 읽는 도중이라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가수가 나를 위한 노래를 요리했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 순간을 내가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일요일 오후, 나는 그런 순간이 펼쳐질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수는 소설의 분위기로 노래를 해보자고 말했고, 노랫말이 내 마음에 와 남았다. 내 꿈은 너무 작아. 그렇다. 내 꿈은 너무 작다. 때로는 커지려는 꿈을 작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그 작은 꿈에 대해서도 나는 자격을 자주 생각했다. 나는 그 작은 꿈조차 제대로 가질 수도 없는 내 마음이 안타까웠고, 어느 날에는 피곤했고, 어느 날에는 서글펐고, 어느 날에는 오래 입은 스웨터에 뭉쳐진 보풀처럼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마카세 식당에 가본 적도 없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경험한 ‘오헬렌 레스토랑 오마카세’는 훌륭했다. 그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예술이 존재해야 하는지, 예술이 무엇을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지. 예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두 다른 언어를 쓴다. 우리가 말하는 ‘안녕’이라는 말에 단순히 ‘안녕’만 있을까? 우리가 말하는 ‘고마워’라는 말에 단순히 ‘고마워’만 있을까? 안녕을 그냥 안녕이라고 할 수 없고, 고마워를 그냥 고마워라고 할 수 없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모든 상황에 모든 언어는 다 다른 뜻을 지닌다. 어제 내가 경험한 예술은 선택의 순간, 사소한 대화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세계였다. 가수는 내게 안부를 물었고, 나는 일상적인 안부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대답했다. 가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노래를 시작했고 내 마음은 거기에 맞춰 동요했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많은 순간이 있다. 아이와 나는 같은 마음으로 벨을 눌렀고, 함께 음악을 들었고, 전시를 보았다. 우리는 그런 선택을 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하루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작은 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벨을 누른 순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노래를 듣던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것을 위로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순간에 적합한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오마카세. 음악이 요리되는 순간, 나는 거기에 존재했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가만히 나는 그 순간을 듣고 있었다. 차분하게 그 순간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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