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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l 10. 2021

그 시절 나의 아이돌

도저히 하차할 수 없도록 설정된 그들의 목소리

어린이 시절이 지나고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신기할 정도로 아이돌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몸은 우리가 자는 사이에 미세하게 세팅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 최적화된 상태로 말이다. 중학생이 된 나의 관심사는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쯤부터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를 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쯤부터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가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만의 취향을 구축해 나가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들에게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의 목소리, 몸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시절 나의 아이돌을, 그들을 좋아했던 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은 3명이다. 바로 그들은 김정민, 임창정, 은지원이다. 난 그들의 음반 테이프를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엽서와 포스터 등은 사라지고 없지만 테이프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좋아한 가수는 김정민이다. 가수 김정민이 세상 심각한 얼굴로 '너를 내게 주려고' 하면서 노래를 시작했을 때 내 미간은 분명 그와 닮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노래는 대부분 심각했다. 세상 온갖 풍파는 다 자신이 겪는다는 자세로 노래에 임했다. 고음으로 인해 그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마다 관중들은 더 환호했다. 

'붐붐붐'을 부르면서 다리 한쪽을 건들거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처럼 스쳐간 그녀 때문에 친구랑 손절하면서 부르는 노래에 춤이라니, 총체적 난국에도 우리는 김정민에게 열광했다. 누가 보면 축제라도 벌어진 줄 알 거다. 아니면 김정민이 그 친구를 이기길 바라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줄 오해할지도 모른다. 사실 내 또래에 김정민을 좋아하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더 젊은 오빠들을 좋아했다. 대부분의 중학생은 김정민보다 R.ef를 더 좋아했다. 실제로 내 친구는 R.ef의 멤버 성대현에게 푹 빠져 팬클럽에 가입했다. 공개 방송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기본, R.ef와 함께 여름캠프를 가서 잡지에 얼굴이 실리기도 했다. H.O.T와 젝스키스는 다음 라운드다.


김정민은 1994년 '그대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앨범으로 데뷔했고, 1995년 '4LOVE'라는 앨범으로 유명해졌다. 이 앨범의 수록곡 중 '슬픈 언약식', '마지막 약속', '붐붐붐'은 그 시절을 지난 세대라면 다 알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나는 이 앨범 중에 '언제나 항상 내 곁에'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다른 노래와는 달리 목을 좀 쉬어가는 느낌인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푹 빠져들었다.


기다릴 누가 있는 건 살아갈 힘이 될 거야.
마지막 내가 눈 감을 때 너의 곁에서
너를 위해 모두 줄 거야
남겨둔 사랑의 마음을
내 곁에 있는 그것으로 넌 세상 전부를 주는 걸

김정민 2집 '언제나 항상 내 곁에' 가사 중에서


옛날 노래 가사는 참 가슴을 후벼 판다. 뭘 그렇게 다 주고 싶은지, 남겨둔 사랑의 마음까지 다 준단다. 마음을 건드리는 수준이 아닌 가슴을 치는 그의 호소력 깊은 노래를 외면할 수 없었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테이프를 재생시켰다. 내 사랑은 너뿐이야 죽는 날까지 내게 함께 있는 사랑을, 나도 모르게 팔을 올려 휘젓고 싶어 진다. 


요즘 '놀면 뭐하니'에서 나오는 김정민을 볼 때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흘러간 세월이 무색할 만큼 멋진(적어도 내게는 그래 보인다) 모습으로, 그때 그 시절 노래를 부르는 그에게 고맙기도 하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가수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 기쁘다. 모든 시간이 흘러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아니었다. 그의 노래 소절 하나로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그로 인해 그때의 시간을 보너스로 할당받은 기분이다. 오래간만에 그의 앨범을 순서대로 들어본다. 가수 김정민도, 중학생이었던 나도 몰랐을 미래에서. 

그동안 왜 가수 활동을 안 했냐는 물음에 김정민은 계속 해왔다고 대답했다. 다소 민망한 분위기가 수습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 기분도 살짝 멋쩍어졌다. 그가 계속해서 앨범을 내왔다는 사실을 검색을 통해 확인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그에게 공백은 없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계속해서 낸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 반면 가수 임창정에게는 그런 가짜 공백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1997년 '그때 또다시'라는 노래로 가수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도 앨범을 내면 주목을 받는 현시대의 가수다. 그때 그 시절의 가수인 동시에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가수다. 

임창정과 김정민의 노래는 결이 다르다. 김정민의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팠다면, 임창정의 노래는 가슴을 아리게 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김정민이라면, 사랑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노래로 달래는 임창정은 그 시절 우리의 서툰 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마음은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이해할 수 있니 난 눈물 나는 날에는  
니 목소리 그리워진다는 걸  
하지만 나는 아무 표현할 수가 없었어

임창정 4집 '이해할 수 있니' 가수 중에서


임창정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나는 기꺼에 음반 가게 가서 고깃고깃한 지폐를 내밀었다. 카세트에 임창정 4집 테이프를 넣고 하염없이 듣기 시작했다. 고작 중학생이면서 꽤나 사연 있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말이다. 세상 심각한 얼굴로 음악 감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테이프를 뒤집을 시간이 온다. 그렇게 그의 노래의 심취해 있던 어느 날, 나는 팬레터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의 노래에 감명받은 중학생의 심정을 구구절절 종이에 적는다. 종이에 여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빽빽하게 채워진 팬레터를 확인하며 여중학생은 상상한다. 임창정 오빠가 내 편지를 읽고 흐뭇해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가 내 팬레터를 잘 받았을까? 반송이 되진 않았으니 도착한 건 확실하다. 나는 임창정에게 딱 한 번의 팬레터를 보냈다. 답장을 받을 수 없는 편지는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활발하게 가수 활동을 하다가 2003년 10집 활동을 마친 후에 가수 은퇴 선언을 한다. 배우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가수는 가수, 연기자는 연기자로 구분되던 시대였다. 임창정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정도로 가수이면서 연기자였고, 연기자이면서 가수였다. 임창정이 가수 은퇴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은퇴하지 않고 그냥 다 하면 되지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내 말을 듣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연기자로서도 좋은 활동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그는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 은퇴 선언 후 6년 만이었다. 나는 그가 새로 발표한 노래를 찾아 듣지는 않았다. 내가 찾아 듣지 않아도 임창정의 노래는 이전에도, 지금도 꽤 잘 나간다. 그가 다시 노래하는 것은 내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 시절 나의 아이돌이 귀환해서 계속 노래를 하고, 그때의 명성을 이어간다는 사실은 내게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도 젝스키스와 H.O.T를 놓고 많은 논쟁을 한다. 젝스키스는 1997년 4월 15일 데뷔했다.  H.O.T는 1996년 9월 7일 데뷔했다.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의 팬인지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대체로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 뒤에 '마누라'를 붙이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같은 멤버를 좋아하면 오히려 더 사이가 돈독해지기도 했다. 누구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도 파악이 가능했다. 기획사에서 의도한 것이겠지만 멤버마다 개성이 강했다.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 귀여운 스타일, 과묵한 스타일 등등, 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우리를 자주 설레게 했다. 

젝스키스 팬이면 화이트 키스와 블랙 키스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젝스키스의 팬이라기보다는 은지원의 팬이었다. 세련된 억양으로 랩을 하면서 칼군무를 하는 젝스키스의 멤버 은지원은 내 눈 안에서 반짝였다. 무표정에서 웃음이 터지기 전의 그의 수줍은 표정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잡지에 나온 사진에서는 카리스마를 숨길 수 없는 자태로 포즈를 취했다.


아무리 '단지 널 사랑해'라고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젝스키스 'Road Fighter' 앨범에 수록된 'Chance'라는 곡은 나의 ID로 선택되어 지금까지도 활약 중이다. 은지원이 '예~ 됐어 내가 있어'라며 노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모습에서 아이돌의 진한 향기가 난다. 예전 노래는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으로 말한다. 자존심이 뭐가 중요해, 나한테 오면 된다는 그들의 외침은 연약해진 여자의 마음을 마구 흔든다.



상처뿐인 자존심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솔직하게 니 마음을 열어봐
뒤돌아봐 나를 한 번만 봐
너 하나만을 죽는 날까지 지켜준다
약속했던 내가 있잖아
지금이야 내 맘 말할꺼야
나 다신 너 혼자 아프게 안 할 꺼야
이젠 너만 내게 오면 돼

젝스키스 'Road Fighter' 앨범 수록곡 'Chance' 가사 중에서


'지금이야' 하면서 나를 지켜준다는 그들에게 나는 마음을 열었다. 로드 파이터는 또 어떠한가. 내 몸이 날린다고 하면서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랑스럽다. 노래 중간에 3명씩 박자에 맞춰 번갈아가며 춤을 선보이다가 모두 모여 댄스 퍼포먼스를 하는 부분은 지금 봐도 매력이 넘친다. 그들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원별곡'에서는 경쟁에 얽매인 학생들의 팍팍한 삶을 꼬집고,  'Com' Back'에서 바람을 가르면서 슬픈 사랑을 찾더니, 갑자기 감미로운 목소리로 '오~러브'의 떼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예감'이라는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갑자기 모닝커피를 같이 마시고, 넥타이를 매 주고, 팬들을 핑크빛 세상에 합류시킨다. 도저히 하차할 수 없도록 그들의 목소리는 설정돼 있다. 나만의 여인이 될 거라는 내 단 하나의 예감으로, 이 가사와 함께 나는 여전히 그의 팬으로 남아 있다.


2000년 5월 18일, 젝스키스가 해체하고 은지원은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래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도 좋았다. 은지원이 예능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는 그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의도적으로 은지원은 내게 오로지 아이돌, 가수로 남아 있다.  


젝스키스는 3년이란 짧은 활동 후 수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팬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 또한 지금의 세대가 아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팬층까지 유입시킬 수 있는 저력 있는 그룹(나무위키 인용)이다. 한 마디로 그 시절에도 대단했고, 지금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나의 아이돌은 지금도 꽤 건실하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놀면 뭐하니(MSG워너비 편)'에서 멤버들이 김정민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을 시청하면서 생각했다.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설레어하던 그 시절로, 우리는 잠시 돌아간다. 우리는 그 시절에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계속 거기에 남겨져 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내 마음도 울컥해진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가수가, 나의 10대 시절을 함께 했던 가수가 다시 그때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정말 그리워했던 시간은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노래 하나가 좋아 그에게 열광했던 나의 순수했던 시절의 모습이 아닐까. 

나의 안목에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나의 아이돌들이 대견스럽다. 임창정은 소속사 대표이면서도 계속해서 노래를 발표한다. 자신의 음색과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흐름에 뒤처지지 않은 노래를 만들어 낸다. 은지원 역시 젝스키스의 멤버로 꾸준히 음반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의 아이돌들은 과거형이 아니다. 지금도 보란 듯이 계속 잘해주고 있다. 


나의 10대 시절, 그들과 함께 말랑한 마음을 잘 단련시켰다. 단련된 마음이 잘 있는지 가만히 돌이켜본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을 함께 했던 나의 아이돌에게, 그 시절 용돈을 모아 테이프를 사모으면서 버튼이 닳도록 재생 버튼을 눌렀던 우리들에게, 그들을 반추하며 그 순간들을 기록하는 나에게, 이 글을 바친다.  


너를 내게 주려고, 지금이야, 소주 한 잔!




참고 자료 :

나무 위키

https://namu.wiki/w/%EC% A0% 9D% EC% 8A% A4% ED%82% A4% EC% 8A% A4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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