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창문을 모두 열고 앉아 선풍기 바람을 맞는다. 몇 번이나 보았던 영화를 잠시 멈춤 해두고 매미 소리를 듣는다. 여름이면 매미 소리로 괴로워지기도 하는데 막상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의아해진다. 왜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지. 집에 오는 길 몇 번쯤 생각했다. 며칠 내내 비가 왔다. 그 비는 그 비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여름의 열기로 얼굴까지 후끈 달아오른다. 거실에 앉아 지나간 여름으로 가본다. 그곳은 외갓집이다. 외갓집이 멀어 자주 가지는 못했다. 그 당시 차로 8시간 이상 걸렸고 버스로는 10시간 이상 걸렸다. 지금은 6시간이면 간다고 한다. 이제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출발은 기억해도 어떻게 도착했냐 하면 중간에 기억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리였다. 어쨌거나 어렸던 나와 동생은 그 무료함을 어찌 달랬던 건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딘가로 쫓겨 도망치는 것처럼 출발은 깊은 밤 아니면 아주 이른 새벽이었다. 창밖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외갓집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릴 적 외삼촌네 마루에 앉아 먹던 수박, 만지작거리던 옥수수, 뱀을 잡았다며 들고 있던 사촌 오빠, 거기서 멈춰 버린 모습, 뛰면 먼지가 나던 다듬어지지 않은 흙마당, 친정집에 온 엄마와 작은 이모의 편안한 말소리,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엄마와 이모는 쉬지 않고 말했고 그 사이사이 멍게 맛을 칭찬하기도 했다. 거센 사투리, 모르겠는 말들 속에 깊어지는 밤, 친하지 않은 사촌언니의 방. 모두 진짜인 건지 어느 정도 미화된 기억인 건지 정확하지 않다. 기억과 뒤이어 만들어진 상상 또는 생각이 오래된 기억 속에서 뒤범벅되었다. 그것을 확인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구분되지 않는 진짜, 그 안에서 더듬더듬 찾아보는 장면들.
무더운 여름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외갓집에서 보낸 여름방학의 며칠이다. 그것이 이렇게 강렬하게 남을 줄 그땐 전혀 몰랐다.
매미 소리가 끊겼다 다시 나기를 반복한다. 여름의 한낮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지금이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뒷모습을,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그 긴 머리카락을, 나는 있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을까. 진짜만 담아낼 수 있을까. 적당한 이 간격을, 기억할 수 있을까. 교대로 느끼는 사랑과 그에 따르는 서운함을 잘 간직할 수 있을까.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외갓집의 여름은 여전히 그러할까. 집은 그 자리에 있을 테지만 영영 떠난 사람도 있으니 같지는 않겠지. 사촌 오빠의 웃는 얼굴이 마음에 그려진다. 그 얼굴은 분명 투명하게 맑았다. 어떤 여름은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기도 한다. 어째서 거기까지 가게 된 걸까. 그때 인사를 잘해줄 걸 그랬나 싶다.
안녕히, 안녕히.
이제라도 인사를 해본다. 매미가 아직도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