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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l 13. 2021

기회는 어디에서 올까

우리의 말들은 서로를 가만히 안아준다

첫 브런치북을 발행했다. '월라 X 브런치, 브런치북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를 위해서였다. 다른 브런치북을 구상하며 글을 쓰고 있었지만 글들이 부족했다.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놓은 글들과 미리 써놓은 글들을 하나씩 다듬기 시작했다. 내가 발행한 '밤에 읽는 라디오'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보란 듯이 떨어진 아이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아이템으로 블로그에 계속 글을 올렸다. 블로그에 뜨문뜨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브런치북을 위해 쓴 글들은 아니었지만 응모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밤에 읽는 라디오'는 순전히 내 욕심으로 시작된 기획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어서 혼자 오프닝 멘트 쓰는 연습을 했다. 라디오에서 듣는 오프닝 멘트는 당연히 듣는 재미가 있었다. 라디오 DJ가 아주 편안한 목소리로 청취자에게 말을 건다. 매일 학교에서 보는 친구가 '안녕'이라고 인사하듯이 말이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는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 그곳에서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매일 어떻게 저렇게 다른 이야기를 쓸까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긴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송국 근처에는 가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방송 프로그램 관련 프리뷰 알바를 몇 번 하면서 그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나는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한 생각이었는지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라디오 작가에 대한 미련은 내게 분명 남아 있었다. 나의 미련은 '밤에 읽는 라디오'에 도착했고, 나는 쓰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다고 상상해본다. 해가 저문 밤, 나의 글은 당신과 마주 앉는다. 어색한 인사를 하고, 조심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꺼낸다. 당신은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곱씹으면서. 내가 받고 싶었던 위로의 말들을, 얼굴도 모르는 낯선 당신에게 건넨다. 당신은 마음을 끄덕이며 그 말들을 마음 어딘가에 남긴다. 그 말들은 언젠가 또 다른 이들에게 가 안긴다. 우리의 말들은 서로를 가만히 안아준다.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나서 생각했다. 기회는 어디에서 올까. 여태껏 나는 되도록이면 경쟁에서 빠지는 삶을 추구해왔다. '경쟁'은 사전적 의미로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룸'을 뜻한다. 실제로 기회를 얻는다는 건, 경쟁에 뛰어든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렇다 해도 인생 자체가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글쓰기'라는 같은 목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 플랫폼에서 '나는 평생 무명작가여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부딪혀 보는 마음, 실망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 마음, 내가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마음,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들이 존재한다. 기회는 결국 그런 마음들이 한데 뭉쳐져서 오는 게 아닐까? 


완벽하게 준비된 순간은 안 와.
부족해도 들이밀어.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덕출이 호범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내게도 큰 의미로 남았다.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준비된 순간을 기다렸다. 할 수 없는 날들 속에서 할 수 있는 날들을 기다렸다. 글 쓰기에 충분한 시간, 환경, 감정 상태 등은 제멋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현실은 그저 그럴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덕출의 말처럼 완벽하게 준비된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래, 부족해도 들이밀어 보면 된다. 부족한 것을 아니까 덜 기대하면 된다. 오늘도 한 가지는 해냈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이뤄내면 된다. 그 마음을 내가 알아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밤에 읽는 라디오를 쓰면서 나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족해도 그저 쓰는 것이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서 무작정 썼다. 모난 마음이 매끈하게 다듬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루 종일 뾰족한 마음이었다 해도, 누군가 내 글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말랑한 마음인 채로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브런치북 발행을 하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응모했는지 알게 되었다.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경쟁의 서재'에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서둘러 응모할 정도로 대단한 글도 아닌데 다음에 할 걸 그랬나 잠시 후회도 했다.


그냥 기회를 놓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다. 역시 하는 편이 나은 선택이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주는 기회다. 기회는 타인이 내게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말들은 경쟁한 적이 없다. 부족해도 괜찮다. 그런 과정을 피하는 것은 촌스러운 태도다. 수많은 브런치북에서 내가 쓴 글이 선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차피 잊힐 일이다. 결국 남는 건 내가 스스로 지켜온 마음가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내일의 아침처럼, 나는 다음 글을 써보려고 한다. 당신도 그러길 빈다.

 


밤에 읽는 라디오 

https://brunch.co.kr/brunchbook/radioread-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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