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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l 01. 2021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여름밤의 낭만을 알지 못했던 나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고.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겨울은 추워서 좋았다. 추울수록 두꺼워지는 옷에 나를 감출 수도 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숨길  있을 것만 같았다. 바깥에서 매서운 추위를 느끼다가 집에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온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전해지는 상대의 체온, 두꺼운 이불을 덥고 누워 휴대폰을 지작 거리는 순간들, 그런 모든 순간들은 겨울을 좋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반면 여름은 싫었다. 잠깐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나면서 끈적이는 느낌, 거리의 시멘트 바닥 위로 뜨끈하게 올라오는 열기, 누군가와 의도치 않게 살이 와닿는 순간의 불쾌함, 그런 감정을 숨길 수 없게 하는 볕의 따사로움, 여름을 싫어할 이유들은 수없이 많았다. 봄과 가을은 어쩐지 어중간하게 느껴져서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그랬다.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겨울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겨울을 좋아하는 마음과 멀어지고 있었으면서도 외면했다.


겨울에도 집에서 반팔을 입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추위가 강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생각해보면 출산 이후였다. 출산과 함께 몸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추운 걸 좋아했던 내가 추위를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겨울이 오면 무조건 바닥은 따뜻해야 잠이 온다. 거의 봄이 끝날 때까지 온수 매트를 튼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여름이 견디기 쉬워졌다. 땀이 나서 끈적거린다 해도 추운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물론 겨울이 싫어진 건 아니다. 몸이 추운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뿐이다.


여름, 다시 겪어보니 생각보다 괜찮다. 살랑살랑 여름의 바람은 나와 썸을 탄다. 여름밤의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때론 시원하다. 특히 금요일 여름밤, 야외에 마시는 맥주는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바람이 얇은 여름옷과 맨살의 사이를 스치며 더위를 데려갈 때, 그런 기분으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맥주잔을 들 때,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여름밤의 낭만을 알지 못했던 내가 미워질 정도로 여름 볕의 따사로움과 밤공기가 달콤하다. 여름은 생기가 넘친다. 무표정으로 여름을 바라보아도 여름은 내게 그렇지 않다. 언제나 내게 뜨겁다. 어쩌면 그 뜨거움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지도 모르겠다. 추워서 좋았던 겨울과 멀어지고, 가까이 여름이 다가왔다. 올여름에는 얼마나 더울까. 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잔뜩 넣어놔야겠다. 여름밤이 가는 내내 여름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적어봐야겠다. 얼마만큼의 여름이 내게 남아있을까. 나는 그 여름으로 풍덩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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