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식물이 많은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브런치 카페였는데 테이블보다 나무 상자와 화분이 더 많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풀숲에 숨은 토끼처럼 화분 사이에 앉아 소곤대고 있었다. 샐러드를 찍어 먹고 야채 주스를 마시는 그들 사이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불쑥 나온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머리 위로 알로카시아 잎이 드리워진 자리에 앉았다.
사진 속 그녀는 새침함과 더불어 다가가기 어려운 도도함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화통화를 할 때면 아이처럼 칭얼대며 어리광을 보이기도 해서 의외구나 싶었다. 차분하고 예의 바른 그녀의 목소리. 내가 그런 것처럼 그녀도 내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녀와 오랜 기간 통화를 해왔지만 만난 적은 없었다. 우리는 목소리와 사진을 조합하며 서로에 대해 상상만 해왔다.
“어머 안녕하세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분일지 무척 궁금했어요.”
그녀는 붉은 벨벳의 맨드라미 꽃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 때문인지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지 않았다. 맨드라미꽃의 굴곡처럼 작은 물결모양을 이룬 목 부분, 소매는 퍼진 꽃처럼 너울 거렸다. 갑자기 긴장이 사라지고 실재 인물을 만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한 사람의 육체가 눈앞에 나타나자 내게도 온전한 몸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나는 결핍된 것을 보충하겠다는 듯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대화에 몰두했다. 한 존재에 대한 결핍. 말을 할 때면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보내는 습관, 머리카락을 자꾸 만지는 것, 호흡이 길지 않은 것, 눈 아래에 나이를 짐작케 하는 그늘, 작은 입.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식물이 내뿜는 신선한 기운을 마시며 커피 잔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만으로 타로상담을 하면 개성이 다른 여러 가지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진취적이고 성깔 있는 목소리, 명석하고 유쾌한 목소리, 의기소침하고 서정적인 목소리. 철분이 섞인 듯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도 있다. 목소리를 듣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목소리 안에 텅 빈 공간이 있는 듯 공허함이 실려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돌멩이처럼 단단하다. 부드러운 바람처럼 따스한 사람도 있다. 얼굴이나 손금처럼 목소리도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목소리들은 아주 먼 곳에서 올 때도 있다. 중국이나 캐나다, 일본.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조각들은 평범하지만 한편으로는 개별적이고 특이한 구석도 있다. 아 이런 인생도 있구나,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냈을까, 싶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긴 통화가 끝나고 나면 허무함이 남는다. 아마도 육체가 주는 물질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눈빛과 표정이 반가웠다. 파편이 아니라 전체로서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시금치와 버섯을 으깬 오믈렛은 특별한 맛이 없었다. 그녀가 알려주는 대로 이름을 알 수 없는 흰색 소스를 발라 먹었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았다.
“여긴 마케팅이 성공한 카페네요. 사진보고 엄청 기대했었는데 직접 와보니 그만그만해요.” 앞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 남자는 반팔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식물들 사이에 파묻혀 등을 구부리고 있었는데 등뼈가 도드라지게 튀어나와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난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상담을 위한 자리는 아니고 편하게 식사나 하자고 했던지라 나는 별 부담 없이 맞장구를 쳤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방식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어젯밤에는 너무 괴로워서 수면제를 먹고 잤어요.”
그녀는 가늘고 하얀 손을 들어 머리를 짚었다.
“하지만 괜찮아요. 이젠 정리 했어요.”
그녀의 주된 질문은 늘 연애였다. 우리를 그토록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사랑, 나도 모를 내 마음.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심, 사랑받고 싶지만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 사랑이라는 끝없는 이해충돌의 이야기. 그녀 또한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은 직업을 가진 그녀는 미모도 뛰어났다. 그런데 왜 자기는 결혼을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마흔을 앞둔 나이다보니 조급함도 생기고 좋은 직업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것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혼에 도무지 자신이 없어요. 연애는 좋은데 결혼 할 생각을 하니 문제되지 않던 소소한 것 까지 다 문젯거리가 돼요. 지난 한 달간 남자친구와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이렇게 싸우는데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지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내가 뭐가 아쉬워서 많은 걸 희생해야 되나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또 혼자 늙어가자니 외롭고. 그래도 이렇게 휩쓸려 가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울리히 벡은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의 형태는 근대 이후에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근대 이후 ‘개인’이 탄생하면서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이라는 개념도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진공상태의 숭고함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형식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유년기 초기에 겪은 개인적인 반응과 체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틀 지우고 있는 사회 구조들, 즉 노동 조건과 생활 조건, 가족의 이상,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사람들의 개인적 욕구와 소망을 조직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가치들과 같은 사회 구조들을 포함하고 있다.”
나의 감정이 순수하게 감정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 구조의 영향 하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사랑의 그 숱한 혼란은 당연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말안에는 실상 사회적인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그 혼란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몰라 힘들어한다. 예전에는 친구나 언니, 직장 선배에게 연애상담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타로를 많이 본다. 그러니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다양한 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
연애의 시작단계에는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얼마나 내게 빠져있고 내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고, 설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상대가 열렬히 사랑에 빠질 만큼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해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질문은 달라진다. 그 사람이 날 좋아하는 건 알겠고, 내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것도 많이 줄 수 있는지를. 이 단계에 있는 커플은 어떤 말을 해도 신나서 웃는다. 마냥 좋다. 내가 바라던 왕자님과 공주님일 거라는 환상이 하늘만큼 클 때니까 당연하다.
연애의 중간단계에 이르면 양다리를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고,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것 같은데 헤어지자니 아쉬워 어정쩡한 사람도 있다. 새로운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보험 삼아 옆에 두려는 케이스다. 이 때는 상대와 내가 얼마나 돈을 쓰는지가 예민한 문제가 된다. 양다리를 시작한 사람은 저울질을 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이 남자는 이게 좋은데 이게 아쉽고, 저 남자는 이게 좋은데 이게 아쉽다. 그 둘을 합쳤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으니 몸과 마음이 바쁘다.
연애의 마지막단계는 결혼으로 가거나 쓰라린 이별이다. 쓰라린 이별을 한 사람은 주구장창 상대방의 마음을 물어본다. “그 사람한테 연락이 올까요? 언제 올까요? 제가 먼저 해도 될까요?” 이처럼 사랑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고 평소라면 차마 부끄러워 꺼내지 못할 말도 하게 만든다. “내가 그 사람한테 가장 큰 사랑이었나요?” 이런 식이다. 악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보다 더 좋은 여자는 못 만나겠죠? 나중에 나랑 헤어진 걸 두고두고 후회하겠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사나운 맹수로 변하곤 한다. 자기에게 이런 면이 있었을까 싶게 난폭해지고, 치졸하게 상대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자신이 이렇게 계산적인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고, 질투의 불길에 싸여 독사처럼 표독해진다. 유치함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리석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은 위험한 친밀함이고 쓰라린 달콤함이다. 무엇보다 온통 동물적이다. 그것은 헐떡이고 달려들고 차지하려하고 올라타려 한다. 온갖 모순 속에서 뒹굴다 쓰러진다. 그러다 평소의 우아함과 평화로운 모습을 다시 찾는 것은 결국 이별 후, 혼자가 되었을 때 이다.
“식물처럼 고요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그녀는 알로카시아 잎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그 모든 사랑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엇이 남자와 여자를 그런 불길 속에 빠지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시간은 흐를 것이고 그녀의 삶은 자라날 것이고, 사랑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남자 직원은 창가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식물들은 적은 흙속이라도 뿌리를 내려 생을 지탱하고 있었다. 햇빛을 찾아 고개를 빼내 듯 속대를 밀어 올리며 초록 잎을 펼쳤지만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