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

by 열매


신림역은 고시촌과 순대 골목으로 유명하지만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 입구로 늘 사람들이 개미처럼 올라오는 게 보였다. 달려가는 사람, 친구를 부르는 사람,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 나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루해지면 창밖으로 거리를 내다보곤 했다. 그곳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로 인해 생기를 얻고 있었다. 도시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낱낱의 인간이 도시를 살아있게 했다. 질서와 혼돈 속에서.


타로샵은 영화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주말이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간혹 배우의 무대인사라도 있으면 환호성이 울리기도 했다. 그 자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람들은 앉아있는 나를 구경했다. 서로의 시선은 주체가 되기도 하고 대상이 되기도 하며 어지럽게 얽혔다. 그 시선이 피곤해지면 나는 타로카드를 이러저리 뽑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한 남자와 여학생이 팝콘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커플이 타로를 보는 경우는 많고 그들은 대부분 젊은 연인들이다. 그런데 앞에 앉은 남자와 여자는 참으로 묘한 관계로 보였다. 남자는 40대 초반쯤이고, 여학생은 중학교 3학년, 잘해야 고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였다. 그들의 묘한 분위기는 서로의 호칭과 태도의 불일치 때문이었다.

“연이 뭐 보고 싶어? 연애운 볼까?”

남자는 여학생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그러자 여학생은 팝콘을 조물조물 먹으며, 아 싫어요, 라고 한다. 아이는 나를 한번 보더니, 남자를 향해 “아빠 보고 싶은 거 봐요.”라며 다시 팝콘을 먹었다. 남자는 겸연쩍은 얼굴이다.

“그럼 직업운이나 먼저 볼까.”

여학생이 남자를 향해 부르는 ‘아빠’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은 화장을 하고 붉은 립스틱을 칠했다. 팝콘을 먹으며 휴대폰을 쳐다볼 뿐 남자가 뽑는 카드에는 관심이 없다. 타로에 관심이 없기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다소 초조한 듯 여학생을 연신 쳐다봤다. 그러다 여학생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자기 허벅지에 둔다.


만약 그 남자가 여학생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여학생이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두 사람을 유심히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은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여느 회사원처럼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옷차림에 평범한 말투를 쓰는 남자.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자기를 꾸미고 싶어 하는 정도의 치장을 한 여자 아이. 그런데 그들이 함께 있으니 묘한 성적 분위기가 풍기었다. 남자는 숨길 수 없는 태도로 여학생을 탐하고 싶어 했다. 여학생이 내내 아빠라고 부르는 그 남자가.

“앞으로 잘 될 거라네. 들었지?”

남자는 여학생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여학생은 그런 행동에 익숙한 듯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깔깔 웃는다.

“그럼 나 예쁜 것 많이 사 줄 거예요?”


이 두 사람을 보자 악마 카드가 떠올랐다. 메이저 15번 카드인 악마 카드는 나체의 남녀가 악마 아래 서 있는 그림이다. 악마는 큰 뿔이 난 숫양의 얼굴에 수염이 많고 노여운 표정이다. 유혹의 손짓처럼 한 손은 들어 올리고 다른 손은 횃불을 들고 있다. 그 손은 악마의 발아래 나체로 서 있는 남자에게 향한다. 남자와 여자의 목에는 굵은 쇠사슬이 묶여 있고 그것은 악마가 딛고 있는 문의 손잡이로 이어져 있다. 남자도 여자도 머리엔 뿔이 나 있다. 꼬리도 길게 나와 있어서 마치 새끼 악마 같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악마의 포박 아래 묶여있지만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과 악마 사이에 같은 피가 흐른다는 걸 알고 있는 얼굴이다. 완벽히 악마의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마적 성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카드가 상징하는 바는 우리가 가진 내부의 약점과 어둠이다. 우리가 가진 약점은 많겠지만 특히나 이 카드는 문란한 성적인 에너지, 나쁜 관계, 집착 등을 상징한다. 그런데도 악마카드는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우리가 범죄영화나 사이코패스 영화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평범한 것에서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쾌락을 맛보게 해주는 듯하다.


여학생은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 수업>에 나오는 민희처럼 말이다. 여학생이 어떤 이유로 원조교제를 시작했는지, 그런 장사는 누가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도덕적 판단은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그런 일은 세상에 존재하고 그것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를 것이다. <인간 수업>에 나오는 고등학생 중에는 성매매의 포주도 있고 남자를 상대하는 당사자도 있다. 그러나 포주를 하는 아이나 성매매를 하는 아이나 평범한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포주를 하는 남학생은 모범생이다.

이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는 돈이다. 돈이 필요하다는 한 가지 목적, 그것은 어른들의 목적과 다를 바 없다. <인간 수업>이 보여주는 섬뜩한 점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아이들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싶기도 하다.


남자는 어떤 환상을 갖고 있을까. 남자는 여학생을 통해 어떤 환상이 실현되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열등감으로 인해 성인 여성을 만나지 못하는 걸까. 한 사람의 성적 취향과 그에 따르는 심리적 풍경은 간단치 않다. 그의 전 인생을 훑어보아야 하고 무의식을 끄집어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도 아니면 그저 호기심이거나. 그러나 나는 그 남자의 심리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건 아니다. 그들이 그저 평범해 보인다는 것이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아침이 되면 남자는 출근할 것이고 여학생은 학교에 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것을 단지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아르바이트 정도.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어딘지 서글프다. 떳떳하지 못한 남자의 표정, 내 눈치를 살피는 눈. 조금 움직이면 그들의 목에 쇠사슬이 감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악마카드에 나오는 남녀처럼 그들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하고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관심이 없다.

타로카드 속 그림이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숨은 욕망을 담고 있다. 어느 때는 내게도 악마카드가 뽑혀 나온다. 지하실에 들어선 것처럼 어두컴컴한 내면이 드러난다. 어둠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를지라도 왠지 악마카드의 그림에 부합하는 것 같다. 나는 자유롭지 못하고 꼼짝없이 묶여있지만, 그것이 아주 싫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의 힘에는 매혹적인 면도 있다고 느낀다.


여학생은 팝콘을 남자에게 맡기고 손을 탁탁 털더니 타로카드 가까이 다가앉는다.

“저는 금전운 볼래요. 나 몇 살부터 돈 많이 벌어요?”

여학생은 처음으로 눈을 반짝인다. 그 표정이 실로 진지하고 순진하다. 돈을 많이 벌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좋은 차도 사고, 좋은 집도 사고, 옷도 많이 살 거란다.

아이는 손을 비비더니 카드를 한 장 한 장 뽑는다. 내가 카드를 뒤집을 때마다 기대에 찬 얼굴로 쳐다본다. 마치 자신의 운명이 그 한 장에 담겨있기라도 한 듯. 나는 아이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사실 아이가 직접적으로 말해서 그렇지 타로를 보는 많은 사람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금전운이다. 그리고 아이처럼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싶은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막연히 돈이 많으면 좋을 것 같고,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악마카드를 떠올려 본다. 우리를 발아래 두고 지배하는 것은 스스로 항복하고 만 우리의 욕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악마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갖고 싶고 갈망하는 것이 나보다 커져 버렸을 때 그것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고 만다. 나의 존재를 삼키고 목적도 없이 그것에 끌려다닌다. 그것은 내게서 나왔지만 나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내 마음의 문제로만 본다면 악마는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를 길들이고 조종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구조가 우리의 욕망을 규정한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깡의 유명한 말처럼 나의 욕망은 고유한 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걸 나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은 도시의 도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또한 그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것이 저 발아래 있는 도시의 삶이다.


여학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아빠 영화 시작하겠어요. 빨리 가요.”

그리고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영화관으로 걸어갔다. 아이의 가늘고 하얀 다리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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