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는 사람들

by 열매

아이는 명절이 싫었다. 뻣뻣한 깃이 달린 새 옷은 목을 조여 왔다. 아버지는 검은 자동차를 집 앞에 세우고 어서 타라고 한다. 올 해도 엄마는 가지 않는다. 집이 점점 멀어질수록 엄마도 작아진다. 누가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른들은 아이의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쓰다듬는다. 요 녀석 많이 컸네. 갈수록 인물이 훤하구만.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호탕하게 웃는다. 아줌마들은 아이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엄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는 점점 초조해진다. 친척 어른들이 차례상 앞에 서서 절할 준비를 한다. 아이는 오늘 아침 엄마가 당부한 말을 떠올린다. 넌 하느님의 자녀야. 귀신한테 절하면 안돼. 알았지? 제사상에 절대 절하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굽혀 절을 한다. 아이는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손을 들어 이마에 올리려다 목을 조이는 옷깃을 잡아 늘린다. 옆에 있던 어른이 아이의 어깨를 누르며 절을 시킨다. 아이는 울음을 참으려 입을 꼭 다문다.

“늘 그랬어요. 그것이 제겐 큰 딜레마였어요. 절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아버지는 하라고 하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엄마가 두 번째 부인이란 걸 제대로 안건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한 달에 두어 번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가셨어요. 명절이면 절 데리고 가서 친척들에게 인사를 시켰죠.”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을 찾던 남자는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사업과 금전에 대해 물어보더니 아버지가 언제까지 살 것 같냐고 묻길래 나는 그냥 웃었다.


5월이라 벚꽃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이름 모를 하얀 꽃 위로 벌들이 윙윙대며 날아다니고 흰 꽃잎은 쉽게 떨어져 바람을 따라 한쪽으로 몰려갔다. 여자 아이는 분홍색 치마를 입고 폴짝폴짝 뛰다가 빙그르르 맴을 돈다. 어떤 불행도 없을 것 같은 빛나는 오후.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 옆에 작은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자꾸 손톱을 뜯으며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남자 아이.

“엄마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새벽에도, 평일에도, 주일에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매달릴 수 있는 건 하느님 밖에 없었겠구나 싶긴 해요. 아버지와 몇 살 차이냐고요? 스무살이죠. 아버지가 오는 날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어요. 큰 차를 몰고 오는 아버지가 제겐 영웅처럼 보였지만, 밤이 되면 엄마에게 큰소리를 치거나 물건을 부수곤 했으니까요. 엄마는 같이 소리를 지르다 울었어요. 전 나이가 들면서는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어요. 엄마의 슬픈 얼굴을 보는 게 겁이 났으니까요. 숨이 막혔습니다.”

긴 천으로 온 몸을 감싼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녀의 왼쪽에 남자 아이가 바짝 붙어 앉아 있다. 이 가녀린 모습의 모자는 작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중이다. 여자는 울고 있는 걸까. 아이를 보듬을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여자의 슬픔은 크고 견고하다. 그들을 포위한 여섯 개의 칼이 배 위에 꽂혀있다. 그 칼들은 여자와 아이가 꼼짝도 하지 못하게 가두고 있다. 강을 건너려면 얼마나 오래 가야할까. 강바람은 차고 어둡다. 아이는 엄마의 울음에 익숙한지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남자는 오래도록 카드를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모든 것이 이와 같았다는 듯. 남자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 이렇게 말했다.

“여기 긴 나무막대를 잡고 배를 건네는 남자는 누구죠? 아버지는 아닌 것 같아요.”

한참 만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어쩜 이 남자는 저인지도 모르겠어요. 엄마를 지킬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이 들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복형제가 둘 있어요. 큰어머니도 살아 계시죠.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겠죠. 내가 엄마의 방패이자 창이고 존재 이유기도 한 겁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면 엄마의 얼굴에서 슬픔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요.”


밤일까. 강물은 짙은 청회색이다. 그들은 밤의 강을 건너는 중일까. 나룻배를 젓고 있는 남자는 여자와 아이의 슬픔과는 무관해 보인다. 밤이라 강물이 잘 보이질 않는다. 노를 젓는 남자는 오로지 무사히 강을 건너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 가녀린 여자와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남자는 또한 배에 꽂힌 칼이 쓰러지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중 하나라도 넘어지면 여자와 아이가 다칠 수 있다. 남자는 이 모두를 생각하며 출렁이는 강물을 저어간다. 그가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좁은 나무판이 전부인 채,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남자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벚나무 그늘에 서서 담배를 피운다. 작은 잎들이 그늘을 만들어 남자의 얼굴을 흔들어 놓는다. 중년이 된 남자. 어쩜 모든 것이 그저 이야기일 뿐이지 않나. 남자는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긴 시간을 회상했는지 피곤한 얼굴이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그를 스쳐지나간다. 남자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다가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남자는 가게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린 사람처럼 새삼 어색하게 웃었다. 남자는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다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꺼내들었다. 책장을 듬성듬성 넘기더니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까라마조프의 둘째 아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잘 없죠. 소피야 이바노브나에요. 저는 일부러 그 이름을 외웠습니다.”

남자는 왜 이 모든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강을 건너는 나룻배라도 되는 양, 그러면 어두운 강이 끝나기라도 하는 양,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에게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룻배에 부딪히는 물결처럼 들렸다.

“간혹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서 아버지집에서 하룻밤을 재웠어요. 그러면 아버지와 큰엄마 그리고 제가 한 방에서 잤어요. 그런 밤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어요. 아버지는 나를 데려다 주며 엄마가 얼마나 자주 밖으로 나가는지 그리고 무얼 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집에 오면 엄마가 큰집에는 어떤 살림살이가 있는지 물었어요. 나는 누구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다 모른다고만 했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입을 삐쭉거리며 돌아앉았어요.”


저 멀리 강 건너엔 작은 언덕과 나무들뿐이다. 그들이 강을 건너가면 그곳엔 따뜻한 집이 있을까. 모든 것이 안온하고 평화로운 집이 있을까. 남자는 짧은 손톱을 자꾸만 뜯었다.

“결국 저는 엄마의 유일한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다고 했다. 신학대학교에 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걸 예전부터 알았다. 엄마는 내내 기도를 하고 ‘우리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엄마에게 남자는 자기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혼란을 내비칠 수 없었다. 내 삶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남자는 어느 날 엄마를 보며 말했다. 난 목사가 되지 않을 겁니다.

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손을 하나씩 잡고 걸어간다. 고개를 이리 저리 흔들며 뭐라고 종알종알 거린다. 엄마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아이의 손을 뿌리친다. 아이는 금세 겁을 집어먹는다. 이제 그들은 보이지 않고 나무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나와 가게 입구에 다다랐다. 빛나던 햇살이 한풀 꺾여 서늘해지는 시간이다.

남자는 커피를 한잔 더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 나룻배를 젓는 남자처럼 말입니다. 내가 균형을 잡지 않으면 모두가 빠져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잘못하다간 저 칼들이 쓰러져 우리를 덮칠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여섯 개의 칼 카드를 지배하는 것은 침묵이다. 나룻배에 부딪히는 강물의 규칙적인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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