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점술가라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타로점에 익숙하기 때문에 나를 점술가로 본다. 그럴 때면 항변하고 싶다가도 모든 직업인이 다소간 자기 직업에 대한 오해를 받겠거니 생각하고 만다.
점술가란 말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것은 내가 타로를 점술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와 손님 사이에 생각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타로를 대화의 도구, 위로의 도구 혹은 인생을 객관화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손님 중에는 타로의 예언적 능력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점술은 어딘지 비이성적 함정에 빠진 인상을 주지만, 그럼에도 점을 보는 것은 분명 재미가 있다.
어느 날 단골손님인 k가 신점을 보러간다고 했다. 그녀는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서른도 안 된 나이에 가게를 두 곳이나 운영할 정도로 수완이 좋았다. K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이 매우 컸다. 이마가 넓어서 앞머리를 한참 내려야 얼굴이 작아 보인다며 그게 불만이라고 했다. 타로를 보러올 때면 말보르 담배를 들고 와 지갑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았다.
“타로언니, 나 신점 보러 갈 거예요. 오늘은 가게 안 봐도 되니까 바람도 쐴 겸 갔다 올려고요.”
신점은 어떻게 보는 거냐고 하니까, 신내림 받은 무당이 신끼로 점을 보는 것이란다.
“미사리 근처에 있어요. 처녀무당이예요. 몇 번 갔는데 잘 맞더라고요. 왜요? 언니도 궁금한 거 있어요? 같이 갈래요?”
그녀는 밤을 새우고 새벽에야 정산하는 생활이 오래된지라 친구 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몇 번 밥을 먹자거나,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손님과 사적으로 만나는 것을 꺼리는데 그날은 나도 무료해서 같이 가보자고 했다. 처녀무당은 어떻게 점을 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동안 k가 어떻게 해서 옷가게를 시작하게 됐는지 알게 되었다.
“전문대 졸업하고 개인회사에 취직했었죠. 그런데 그게요, 너무 싫더라고요. 커피타고 잔심부름하는거요. 사장이란 사람은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나 우울했어요.”
아는 언니가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었단다. 자기도 차라리 장사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직원으로 몇 년 일하다가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여러 차례 타로를 봤으면서도 그녀의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새삼 적극적인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다르구나 싶었다. 손님으로 올 때는 몰랐는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보니 그녀의 사장다운 태도가 눈에 띄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는 미사리 근처 어느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밖에서 보니 여느 오피스텔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안에 들어서자 진한 향냄새와 풍겼다. 오피스텔은 복층으로 되어있었는데 일층 가운데에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신선같이 생긴 할아버지, 알록달록한 휘장, 장구와 북. 그런 것들 앞에 과일과 과자가 한 상 가득 놓여 있었다. 처녀무당은 쪽진 머리에 하얀 한복을 입고 있어서 나는 그녀를 보는 게 잠시 무서웠다. 그러나 k는 이곳이 익숙한 듯 처녀무당에게 인사했다. 처녀무당은 정좌를 하고 앉더니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k의 생년월일을 종이에 적더니 나무막대가 든 대나무 통을 흔들었다. 타오르는 촛불 위로 향연기가 꼬리를 물며 올라가고 있었다.
모든 점술사는 그들만의 도구가 있다. 주역의 궤가 적힌 막대나 거북의 등이나 화투장, 혹은 방울 같은 것이다. 그 물건들이 점술사의 손에 들려지고 집중의 순간이 오면 주변 공간은 연극적인 무대가 된다. 그 전과는 다른 시공간이 만들어지고 암호를 풀어내려는 듯 점술사는 자기 앞에 놓인 물건의 형태를 지긋이 바라본다. 무엇이 보일까. 잔뜩 기대에 찬 마음으로 점술사의 표정과 말에 집중하게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소설의 뒷 페이지, 영화의 다음 장면, 노래의 후렴구. 그 뿐인가.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여행가는 날 날씨가 좋을지 나쁠지, 하물며 라면물이 언제 끓을지 지켜볼 때도 미래의 어느 지점을 기다리며 궁금해 한다. 그러니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라면 무엇보다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점술사의 말을 통해 진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감동이거나 놀라움이 아닐까. 현재는 늘 미완의 상태이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것을 경험할지 알지 못한 채, 불안의 지대에 서 있다. 그것은 지루하고 힘들다. 어떤 식이든 결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불안의 지대를 벗어나 완결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일차적으로 점술사에게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놀람과 감동이지만, 실제로는 미완인 현재를 미래의 어느 지점과 연결 지어 완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재라는 미완의 지대를 심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걸 떠나서라도 고대로부터 점을 보는 방식은 실로 다양했으니 그것 자체가 오락적 측면이 분명 있다. 점괘를 기다리는 순간은 노름판에서 돈을 걸고 패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게 된다. 그토록 오랜 세월 별의 모양을 보고, 쌀이 흩어진 모양을 보고, 대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그 형태 너머를 해석해 내려는 점술가들의 노력은 과연 무모한 것일까.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접신의 순간을 기다렸다. 한차례 촛불이 크게 흔들리더니 다시 고요해졌다. 한참 만에 눈을 번쩍 뜬 그녀는 독특한 아우라를 뿜으며 아주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태도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 이것이 너의 미래이니 경청할지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행위예술이거나 연극처럼 보였다. 거기엔 분명 사람을 몰입시키고 긴장시키는 힘이 있었다. 주술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그런 어지러움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처녀무당의 쪽진 머리를 풀고 하얀 한복을 벗었을 때였다.
k와 처녀무당은 꽤 친한 사이인지 점을 다 본 k가 편하게 맥주나 한 잔하자고 분위기를 잡았다. 쪽진 머리를 풀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녀는 여느 젊은 아가씨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강한 눈매를 빼면 말이다.
“며칠 전에 큰 굿이 있어서 힘들었어. 그래도 굿판을 벌이는 동안은 너무 신나.”
처녀무당은 나와 k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제야 k는 나를 가리키며 타로 보는 언니라고 소개했다. 처녀무당은 금세 재미있다는 얼굴로 “나도 타로 한 번 봐줘요.”라고 한다. 나는 이 상황이 갑자기 너무 웃겼다. 타로마스터와 처녀무당이 만나서 서로의 점을 봐준다는 게 말이다. 기에 눌려서 타로가 안 보일 것 같다고 했더니 그녀는 “제가 좀 기가 쎄죠.”라고 한다.
오피스텔 한 쪽 벽에 그녀의 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친구들과 찍은 사진, 혼자 여행 간 사진들이다. 한복을 입지 않은 그녀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예뻤다. 활발한 성격이 사진 속에서도 드러났는데 주로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하다가 신내림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신병이 왔어요.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병원을 여러 곳 다니며 물어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어요. 우리 아빠가 목사거든요. 그래서 기도도 엄청 하고 그랬어요.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집에 갔더니 신을 받아야 한다고 그래요. 아빠는 목사인데 딸은 무당이라니.”
사진 속 그녀는 지금과 달리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이다. 대학 때 찍은 사진인지 다섯 명의 여학생이 앳된 얼굴로 웃고 있다. 늦봄인가 보다. 벚꽃이 떨어져 그녀들의 발아래 하얗게 쌓여있고 저마다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지 못하는 얼굴들은 미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금세 바뀌곤 한다. 조금 전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던 무녀인 그녀가 아니라 아직 젊은 그녀가 점점 내게로 다가왔다. 대학을 그만두고 무녀의 길을 걷게 된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친구들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할 때 그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작두를 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 땐 정말 행복하고 아무 생각이 없거든요.”
점술가를 나타내기에 적당한 타로카드는 메이저 1번 마법사이다. 마법사는 열정을 나타내는 빨간 장미와 순수를 나타내는 흰 백합에 둘러싸인, 생명의 나무 그늘에 서 있다. 수정막대를 쥔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둘째 손가락을 펼친 다른 손은 땅을 가리킨다. 마치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는 영원성을 상징하는 무한대표시가 그려져 있다. 그의 정신은 영원성을 향해있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마법사 앞에는 지,수,화,풍을 상징하는 막대, 컵, 팬타클, 검이 탁자 위에 놓여있다. 마법사는 물질세계의 4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그 자체로 사람이라기보다는 창조성, 세상의 진행원리, 창조와 소멸의 순환성을 상징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 카드의 중요한 점은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원성의 세계가 함께 드러났다 사라지며 순환한다는 것이다. 그 두 세계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보자면 점술사들이야말로 이에 적합한 사람들일 것이다.
점술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미신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고래로부터 점술사들이 존재해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 탐구가 학문적으로 발전되면 과학과 철학이 되고, 원시 통합적인 형태일 때는 점술이나 주술의 세계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점술사를 통해 접하고 싶은 세계 또한 자신들이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이지 않을까.
밤은 꽤나 깊어졌다. 하얀 한복이라는 마법사의 가운을 입은 그녀가 그 가운을 벗었을 때, 마치 모든 환영이 사라진 것처럼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다른 세계에 있다가 이 세계로 건너온 것처럼 젊은 여인은 자신의 목소리로 깔깔 웃는다. 오래전 그녀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자신만의 눈부신 인생을 꿈꾸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평범한 행복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마법사의 가운을 입게 될 자신의 운명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를 저 세계로 밀어 넣은 그것은 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