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은 너무 원대해서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자가 처음 그 꿈을 향해 갈 때는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깨달음에 도달하겠다는 꿈. 그것이 남자의 꿈이었다. 요가와 명상과 아바타코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남자는 자신이 잡으려는 것이 신기루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마흔 살이 넘은 남자는 택배노동자로 일한다고 했다. 냉동 창고에서 오랫동안 일하다보니 몸도 많이 상했단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떠나간 여자 친구가 다시 돌아올까 하는 겁니다. 그렇죠. 전 결혼을 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게 가장 큰 문제요. 여자 친구요? 네 같은 명상센터에서 만났어요. 그 친구도 나이가 들면서 현실을 생각하게 된 거죠. 요즘은 경제공부를 하고 있어요. 주식투자에 관심도 갖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왜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일 년에 서너 번 전화를 했다. 여자 친구와 다툼이 잦다고 걱정한 것이 몇 달 전이었는데, 결국 헤어졌나보다. 자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끝에 쓸쓸하게 웃었다.
“뭐뭐, 그렇죠. 여자 친구 입장에선 당연합니다. 제 제가 많이 부족하죠.”
남자는 자기 인생에서 떨쳐버리지 못한 짐을 끌고 가듯 말을 더듬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남자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 또한 흔히 ‘도판’이라고 하는 곳을 전전한 이력이 있다 보니 그들이 무엇을 쫓는지,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도판’의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불교나 기독교같은 전통 종교의 가르침, 뉴에이지 명상, 자기계발과 접목된 명상프로그램, 인도와 티벳 명상, 위빠사나, 심지어 ‘도를 아십니까’까지. 그 세계에 발을 들이면 그곳은 또 다른 밀림이기도 하고 시장이기도 하다. 서로가 자신이 가르치는 법이 진실하고 다른 법은 사이비라고 하기 십상이다. 각각의 도판은 자신들 만의 체계를 갖추고 있고, 늘 더 높은 경지를 향해 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제 기나긴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이 모든 여정을 시작케 한 남자의 결핍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명상을 하고 깨달음을 찾아 나섰을까.
일곱 개의 컵 카드는 남자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검은 실루엣의 남자는 흥분에 들떠 조급하게 오른 손을 들고 있다. 눈앞에 놓여있는 컵 중 어떤 것을 집어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다. 일곱 개의 컵에는 각각 남자의 두상, 신비한 베일을 쓴 형상, 뱀, 성, 보석, 월계관, 악마가 들어있다. 그러나 컵은 모두 구름 위에 떠 있어서 금방 사라질 환영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남자는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무언가를 잡으려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잡아채기 전에 내가 먼저 잡아야해. 남자는 컵 속의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마치 환한 조명 아래 놓인 상점의 물건처럼 구름 위에 떠 있는 컵은 남자의 눈을 어지럽힌다.
이 카드를 보고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땅 위에 세워져있지 않다. 남자는 환영을 보는 것처럼 컵 속의 물건을 보고 있다. 그것들은 남자의 모든 꿈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검은 실루엣을 한 남자의 주변에는 어떤 현실적인 풍경도 없다. 남자는 단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깨달음보다 더 큰 환영이 있을까 싶어요.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풍문처럼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인도의 요기는 자비로운 미소로 한순간에 사람을 미혹에서 깨어나게 하고, 어떤 승려는 연민과 자비의 설법을 펼치고, 또 누구는 채널링을 통해 오래전 현자와 소통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떠돌았어요. 인도로 미국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러게요. 선생님도 잘 아시는 이야기지요.”
전화기 너머로 간간이 남자의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시간 수행을 했다면 특유의 내공이 있을 법도 한데, 남자는 내내 부끄러워했다. 택배노동자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얼마나 일을 해야 돈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돈을 많이 썼어요. 아바타코스를 하느라 모아두었던 돈을 다 썼죠. 미국에 갔었는데 그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온화하고 서로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모든 방법들에 정통했어요. 축복과 평화의 공동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나의 의식이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황홀감이 있었어요.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다시 돌아오니 먹고 살 돈이 필요했어요.”
남자는 젊은 시절을 다 바친 마음공부가 자신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헛된 짓은 아니었겠죠? 아직도 그 공부를 놓지 않고 있어요. 명상 사이트 안에서는 그래도 나를 인정해주거든요. 이 안에서는 세상과는 다른 계급이 있어요. 흔히 말해 영성이 더 뛰어난 사람이 갑인거죠. 영성의 높이를 어떻게 아느냐고요? 지도자의 인정이죠. 그런 사람은 이 안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몰라요. 제가 택배노동자인줄은요.”
남자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떠올랐다. 장엄한 산 위로 태양빛이 번져가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명상센터에서 온갖 훌륭한 이야길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허무합니다.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이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고통 때문일 경우가 많다. 혹은 결핍 때문이거나. 돌이켜보면 깨달음이라는 그 말 속에는 온갖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최고의 행복, 충만, 위대함, 대자유, 강한 힘, 절대적인 앎, 무너질 수 없는 자신감. 한마디로 절대 무적의 인간. 수행은 그 절대적 힘을 갖기 위해 거쳐야할 길이다. 나도 예전에는 깨달음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이해했었다. 그러니 깨달음에 대한 욕망은 세상의 어떤 욕망보다 큰 것일지 모른다. 천하무적의 인간이 되려고 하니 말이다. 어떤 고통도 나를 침범할 수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말은 불사신이 된다는 숨은 욕망이 아니고 무엇일까. 비루한 인간성을 버리고 싶다는 말이 아니고 달리 무엇일까.
“아버지가 많이 무서웠어요. 가끔 내가 왜 명상이나 깨달음에 끌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누르는 압박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세상을 다 바꿀 수 없으니 내 마음을 단련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아버지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싶었어요. 그렇죠.”
남자는 이제 어떤 것도 자신할 수 없다는 듯 피곤한 목소리다. 내일 또 일을 나가야 하고 거의 열 시간 동안 냉동 창고를 오가며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냉동 창고의 냉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모든 따뜻함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카드를 뽑아보며 그에게 해줄 말이 없을까 생각했다. 한 때는 명확했던 것이 다시 혼란스럽다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나는 다시 카드를 들어 일곱 개의 컵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그의 눈은 흥분과 초조함으로 흔들리고 있다. 입은 반쯤 벌린 채, 자기 앞에 환하게 떠오른 컵의 에너지에 매료되었다. 그는 마치지 못한 그의 일과 생일을 맞은 아내도 잊어버렸다. 돈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도 자신이 친구에게 돈을 꾸러가는 길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바로 앞에 보석이 가득 쌓인 컵이 있으니 손만 뻗으며 그것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자는 보석이 쌓인 컵을 잡으려다가 바로 옆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본다. 남자는 뱀이 자신의 목을 물지 않을까 겁이 나서 뻗었던 손을 거둔다. 저건 잡지 않으면 돼. 나와 상관없는 거야.
이번엔 가운데 컵 속에 우뚝 솟은 형상이 남자의 눈길을 끌었다. 양손을 펼치고 두건을 쓴 형상은 부처상일까. 아니면 신의 형상일까.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광야로 향해야 할까. 나는 늘 위대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유난히 빛나는 저 형상은 값이 꽤 나갈지도 몰라.
일곱 개의 컵은 남자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 중 하나만을 잡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어떤 게 가장 값진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점점 혼란에 빠져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남자가 보석을 향해 손을 뻗자, 자신의 손아귀만 꽉 움켜쥐어질 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남자는 허둥대며 양 손을 뻗어 보석을 잡아보았지만 허사였다. 놀란 남자는 모든 컵들을 가슴으로 끌어당겼지만 바람만 휘하고 지나갔다. 남자는 울상이 되었지만 때는 늦었고 남자의 눈앞에는 검은 허공만 남았다.
남자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야윈 얼굴의 아내가 돈은 구했냐고 물었다.
사찰에 가면 대웅전벽을 따라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 ‘심우도’는 유명하다.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으로 비유해서 그린 것이다.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소를 보고, 소를 길들이고.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일 마지막 그림이다. 소를 찾아 나섰던 남자가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다시 밭을 갈고, 소에게 여물을 주고, 늙은 부모를 봉양할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영웅신화에서도 길을 떠난 남자는 용을 죽이고 신비한 반지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 영웅은 신비한 반지를 깊은 물속에 던져버린다. 그는 다시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해서 가족을 돌본다.
사소하고 비루한 일상이 우리가 발 딛고 있어야할 땅이라는 것은 영웅이나 도를 찾아 떠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남자가 내게 하지 않은 남은 이야기는 그것일지 모른다.
남자의 카톡 사진을 다시 본다. 저 태양은 떠오르는 걸까. 지는 걸까. 냉동 창고의 차가운 냉기 속에서 남자는 어떤 미래를 꿈꿀까. 그에게도 봄이 되면 따뜻한 볕 속에 쉴 곳이 있을까. 그럴 때 자신의 영성은 어떤 힘을 발휘하고 어떤 위안을 줄까.
“저 선생님, 여자 친구는 다시 오진 않 않겠죠?”
손끝에서 사라지는 환영을 바라보듯 남자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