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카드는 무엇보다 승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승리란 외부에서 오는 도전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것이다. 카드 속 젊은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두 마리의 스핑크스가 끄는 전차를 타고 있다. 별이 달린 왕관을 쓰고 어깨에는 초승달이 걸린 갑옷을 입고 있다. 전투에서 승리한 뒤 거리를 행진하는 젊은 장군이거나 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왕자로 보인다. 그러니 이 야심찬 젊은이의 귓가에는 얼마나 큰 환호성이 울리고 있을까. 떨어지는 꽃잎이 길을 뒤덮고, 팡파레가 사방으로 퍼지고, 환희에 찬 사람들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이룰 성공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듯 입술을 꼭 다물고 있다.
열띤 행진이 끝난 뒤, 젊은이는 비로소 홀로 방안에 앉아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안은 적막하기만 하다. 무거운 갑옷과 별이 달린 왕관이 침대 옆에 걸려있다. 그것은 이제 빛을 잃고 검은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하얀 잠옷을 입은 젊은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한동안 움직이질 않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덮고 있다. 한숨소리. 어스름한 달빛이 그의 어깨에 굴곡을 만들었다가 스르르 무너진다.
그녀는 늘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내게 전화했다.
“선생님 오늘도 무척 힘든 하루였어요. 정말 싸이코가 너무 많아요. 왜 나를 가만 놔두질 않는지 모르겠어요. 잠시 만요. 편의점에서 뭘 좀 사야겠어요. 선생님 끊지 마세요. 네네 이거 다 계산해 주세요. 아 죄송해요. 선생님, 배가 너무 고파요.”
그녀는 차안에서, 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집에 도착해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내게 이야길 했다. 잠시도 한가한 틈이 없다는 그녀는 강남에서도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다. 이제 삼십대 후반인 그녀는 전차카드의 젊은이처럼 외부의 도전을 극복하고 성공한 것이다. 스핑크스가 끄는 전차보다 빛나는 외제차를 몰고, 연예인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오늘은 사이코환자한테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요. 실장들에게 월급을 그만큼 많이 줄때는 지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지들은 다 뒤로 물러나고, 원장 나오라고 한다고 나한테 쪼르르 달려오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그녀는 하루 동안에 치른 전쟁의 상처를 내게 보여준다. 핏방울이 맺힌 상채기가 온몸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녀의 하루는 늘 전쟁처럼 긴장되고 숨가쁘고 정신없다고 했다. 직원이 말도 없이 결근하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컴플레인을 거는 환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그런 일들이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볼멘소리로 쉴 새 없이 이야기 한다. 그러다 보면 밤 12시가 넘을 때가 많았다.
“엄마가 오늘도 1억원어치 가방을 샀어요. 에르메스요.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요. 가방이 몇 갠데 또 사다니 정신 나갔어요. 동생은 또 어떻구요. 차가 세대인데 또 차를 사달래요. 정말. 이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요...... 다들 내 돈 쓰기 바쁘죠....... 아 정말 피곤한 날이었요.”
그녀의 말소리가 점점 느려지는가 싶더니 길게 하품을 한다.
“선생님, 저 자야겠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두 마리의 스핑크스가 끄는 전차는 자정이 넘어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자, 데이지를 위해 돈을 벌었다. 그의 목표는 너무 단순하고 순정적이다. 옛 애인었지만 지금은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데이지의 사랑을 얻는 것. 그러기 위해 부자가 된 것이다. 스핑크스가 끄는 전차 대신 번쩍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두꺼운 갑옷 대신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양복을 입은 개츠비는 전차 카드의 상징에 어울리는 젊은이다. 재즈가 흐르는 파티, 환한 조명으로 빛나던 개츠비의 저택, 부나방처럼 개츠비의 저택에 모여든 젊은 청춘들. 강남의 꺼지지 않는 불빛은 개츠비의 화려한 불빛 중 한 줄기가 바다를 건너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개츠비처럼 부자가 되고 싶었다.
“왜 내가 돈에 걸신 들린 것처럼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삼십대 초였어요. 처음 개원을 한게요. 그때는 한 달에 1억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1억을 벌면서도 갈증이 멈추질 않아요. 왜냐구요. 나보다 더 돈 많은 부자가 많으니까요. 우리 병원에 오는 연예인들, 중국갑부들. 선생님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중국갑부는요, 전용기를 타고 와요. 시술 받으려고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유명 연예인, 재벌집 사모님, 텐프로 아가씨들의 이야기는 딴 세상일이었다. 강남의 불빛이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 세계에 입성하기까지 그녀가 겪은 일들은 개츠비의 인생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났지만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전액장학금을 받는 의대에 입학하고, 하루에 서너시간만 자는 생활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대여섯개씩 뛰었어요. 제가 가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죠. 전에도 이 얘길 했던가요. 엄마요? 우리 엄마는 아무 것도 못해요. 남동생도 나만 믿고 있었어요.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쇼핑중독이에요. 하루라도 뭘 사지 않으면 안돼요. 그래도 지금은 제가 돈을 많이 버니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자신의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가난과 불안과 고통의 시간들. 사랑의 실패. 그럼에도 그녀가 감상에 젖는 때는 몇 분 되지 않고 장군처럼 다시 일어선다.
“페이닥터를 구해야하는데 어떤 사람이 좋을지 고민이에요. 요즘 젊은 의사들은 오래 있질 않아요. 저는 돈만 많이 주면 무조건 일했는데, 다른 병원보다 돈을 많이 줘도 오래 안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오로지 돈에 의해서 움직였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돈으로 움직이는게 몸에 익어버렸어요. 진실한 마음이라. 그런 걸 믿지 못하겠어요. 제 주변 사람들은 다 저의 돈을 보고 와요. 다들 상냥하게 웃지만 결국 내 돈을 뜯어내려는 목적이죠. 그래서 저는 누구도 믿질 못하겠어요.”
그녀에게 진실한 감정이 있다면 오로지 불안과 의심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가 되는 동안 그녀가 치른 값비싼 댓가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녀는 곧 잠들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살까하고요. 왜, 모르겠어요.”
그녀에 비한다면 개츠비는 훨씬 행복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전차가 어디를 향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츠비의 열망은 오로지 데이지였다. 옛애인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된 여인에 대한 사랑. 개츠비는 오로지 데이지 앞에 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 돈을 벌었다. 개츠비의 전차는 저 먼 곳에 서 있는 데이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녀가 전차 위에 올라섰을 때 저 멀리 무엇이 보일까. 언덕을 넘어 하늘과 맞닿은 곳에 작은 점처럼 박혀 있는 그것은 무엇일까. 너무 멀어 보이지 않지만 그녀를 향해 손짓하는 저 먼 곳의 형체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녀는 목표를 향해서가 아니라 그저 달리는 전차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멈춰 세울 수 없는 전차.
그녀가 전화를 끊고 나면 나는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마셨다. 마치 전차가 달려가며 흙먼지를 잔뜩 일으켜 눈앞을 가로 막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 세상은 어떤 열의도 없이 죽은 듯 고요하다. 단지 검은 어둠 뿐이다. 전차 카드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전차 앞의 두 마리의 스핑크스는 흰색과 검은색이다. 스핑크스는 전차를 수호하며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버티고 있다. 그것은 인생의 모순을 상징한다. 그러니 전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그 모순을 감당할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순의 바퀴를 굴리며 전차는 달려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미워해요. 왜냐구요? 새파랗게 젊은 여의사가 성공했으니까요. 모두들 다른 술수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기업 사장님의 스폰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잠깐만요. 선생님.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올게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다른 병원에서 스파이를 심어놨더라고요. 접수받는 직원요. 알고 봤더니 스파이였어요. 강남에 있는 병원들은 다들 전쟁이에요. 서로 신고하고 서로 악플을 달고, 스파이를 심고. 이 모든 것이 정말 지겨워요.”
그녀는 양치질을 하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소리가 웅웅 울리고 뒤쪽으로 수돗물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강남의 부잣집은 어떤 가구가 놓여있을까. 데이지가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터트렸던 아름다운 실크셔츠가 옷장 가득 들어있을까.
“선생님, 누구도 믿지 못해서 솔직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늘 법적으로 걸리지 않을지 고심하며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엄마도 동생도 내가 결혼하는 걸 원치 않아요. 왜냐구요? 그래야 내 돈을 마음껏 쓰니까요. 그래도 제겐 가족 밖에 없잖아요. 저를 정말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요? 저의 돈 말고요. 저를요?”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도 전화를 놓지 않는다. 그러다 잠 속으로 빠져들며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 제가 왜 선생님께 밤이면 전화를 하는지 아세요?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예요. 정말......”
그녀는 전화를 끊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들어 버렸다.
전차카드의 젊은이가 입은 갑옷의 어깨에는 두 개의 달이 걸려있다. 하나는 웃는 얼굴, 또 하나는 우는 얼굴이다. 그것은 심리적인 두 개의 다른 얼굴이다. 그 또한 반만 보일 뿐이라 저 너머엔 어떤 얼굴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 결연함을 잃지 않는 젊은이의 얼굴 아래 어떤 시간이 흘렀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상냥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녀는 곧잘 불안하고 무표정해 진다. 혼자 웃고 혼자 울다가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손질해둔 갑옷을 힘겹게 입는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도 모른 채 그녀는 다시 도시의 전장으로 향할 것이다.
개츠비의 전차는 결국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백만장자가 되기까지, 부잣집 여자를 사랑하고 영원히 가슴에 품기까지, 그녀가 줄 수 없는 사랑을 꿈꾸기까지. 그에게는 자기 상상이 이룩한 단순한 무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지가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상상한 것을 위해 젊음을 불사르고도 모든 실패를 의연히 받아들였다. 개츠비는 위대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무너질 허영과 단순한 순정 때문에 역설적으로 위대했다. 개츠비의 후예들에겐 이런 위대함이 있을까?
그녀는 어떤 위대함이 있을까?
“선생님,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내 아이뿐일 것 같아요. 분명 내게도 예쁜 아이가 있겠죠? 아무 의심 없이 나를 보고 웃고, 나만 사랑할 그런 아이요.”
그녀는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