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정원에 대한 아버지의 욕심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미 포화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희귀한 꽃나무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빼곡하게 심긴 나무와 화초 뿌리는 점차 부풀어 올라 정원을 둘러싼 시멘트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어쨌든 끝은 있었다.
어느 저녁 아버지는 처참한 모습으로 대문에 들어섰다. 머리에는 붕대를 동여매고 다리는 절뚝거리며 마루에 올라섰다. 얼굴과 팔뚝에는 두서없는 생채기가 있었다.
“정원에 쌨고 쌘 게 꽃나무인데 뭘 또 캐오려고 그랬대요? 참말로.”
엄마는 아랫목에 이불을 펴면서 말했다.
“잔말 말고 꿀물이나 타와. 아이고 죽겠다.”
아버지는 옷도 벗지 않고 이불에 털썩 누웠다.
“다시는 산에 가서 꽃나무를 캐오지 않을 거야. 내가 산비탈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 뭘 본 줄 알아? 글쎄, 수염이 허연 산신령이 나타났어. 네 이놈! 하고 호통을 치시더라니까.”
두 오빠와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진짠지 꿈인지 알 길이 없어 눈을 껌뻑거리기만 했다.
이처럼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그의 인생을 애처롭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향유할 충분한 지위도,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건설노동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향유란 그저 정원을 가꾸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정도가 다였다. 아버지는 더 멋진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어떤 것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핏속에는 예술적 기질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 삼 남매에게도 면면히 흘러들어온 게 사실이다. 훗날 그 피의 성질이 우리를 현실에 단단히 발 딛지 못하게 한 것도 아버지의 운명과 비슷했다.
그에 비한다면 엄마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무관심했다. 엄마의 세계는 오로지 실용적이고 유용한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 대가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엄마의 이런 기질은 수입이 일정치 않은 아버지의 빈틈을 메우고 가족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모르겠다. 엄마가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는지는.
아버지가 누워있는 동안 우리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우리는 참외밭이나 개천이 집보다 익숙했으니까. 그러나 비 오는 날은 갈 곳이 없어 목재소 창고 안에 서글프게 모여있기도 했다. 우리가 했던 놀이란 게 그저 뛰어다니고 엎어지고 구멍을 파는 것임에도 지겹지 않았던 게 신기하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단연 연날리기였다.
대나무를 다듬어 몸체를 만들고 묵혀두었던 창호지를 잘라 몸통을 만들었다. 긴 꼬리를 붙이면 방안을 쓸고도 남을 길고 낭만적인 가오리연이 된다. 꼬리를 둘둘 말아 쥐고 실패를 잡고 대문을 나서는 두 오빠를 보며 나는 뒤처질세라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같이 가. 내가 연 꼬리 잡을래.”
겨울바람은 휙휙 몰아치고 마른나무는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보다 여린 갈대는 몸을 휘청휘청 뉘었다 세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연 날리는 재주가 없었다. 연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빠가 선심을 쓰듯 실패를 쥐게 해 주면 그제야 탱탱한 실 끝으로 전해지는 연의 비상을 맛볼 수 있었다.
다리까지 이어진 방둑은 비행기 활주로처럼 연을 날리기 위해 뛰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인 길이다. 하늘을 보니 이미 몇몇 아이들이 띄워 놓은 연이 떠다녔다. 제대로 바람을 타고 있는 연은 큰 움직임이 없었지만 어떤 연은 심하게 흔들리다 허무하게 떨어지기도 했다.
두 오빠는 파란색 체육복 바지에 흰 털이 달린 갈색 오버를 입고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비상에 대한 꿈이 더 크다. 그들은 뛰어다니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달리고 달리다 자신의 마음처럼 하늘을 향해 하얀 가오리연을 띄워 보냈다.
그날따라 빼어나게 연이 잘 날랐다. 팔락거리는 연 꼬리를 보느라 젖힌 목이 아픈 줄도 몰랐다. 실패를 잡은 작은 오빠는 신이 나서 더 높이 연을 날리고 싶어 했다. 허공을 가르며 길게 뻗어 올라간 연실. 그것은 차라리 하늘에서 내려주는 명줄 같았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도 연을 따라 떠올랐다. 더 멀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어쩐 일인지 여유로운 비상이 깨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연과 닿아있던 팽팽한 힘이 쭉 빠지고 연은 곧바로 바람을 따라 흐르며 낙하하고 있었다. 어, 어 탄식과 함께 작은 오빠가 말했다.
“실 끝이 메어있지 않았네. 실이 다 풀려버렸어.”
연을 놓친 것이다. 두 오빠는 연이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방죽 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연은 거의 지상에 닿아있었다.
저녁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오빠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둑은 어둑한 저녁 빛과 한 덩어리가 되어가고, 그나마 눈이 쌓인 길가는 희뿌연 그림자가 고였다. 두 개의 밥그릇이 식어갈 즈음, 오빠들은 힘없이 댓돌 위에 오르며 어지러이 신발을 벗었다. 사내아이들은 추락을 겪고 분노를 삭였다.
“연 찾았어?”
“아니, 없어.”
작은 오빠가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흙 묻은 명주실 뭉치가 바람 냄새만 남긴 채 손 위에 놓여있었다. 연은 없었다.
이 장면은 내 기억 속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살다 보니 그때는 몰랐던 우리의 운명이 추락하는 연과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득한 이상을 향해 달렸다. 실에 매달려 있다는 걸 까맣게 잊은 채 더 높이 날아가려 했다.
추락은 비상보다 쉽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보니 손에 남은 건 흙이 잔뜩 묻은 명주실 뭉치뿐이었다. 물론 떠오르기도 했다. 연이 바라보던 풍경처럼 우리의 세계는 넓어졌고 경계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내다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만큼 오래 날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연에 실린 건 우리의 마음이었을 뿐 우리 자신은 비상도 추락도 겪지 않고 방죽 위를 달렸을 뿐이라고. 무엇이 되었건 나는 우리들의 비상과 추락에 대해 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