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홉 살이 되었고 엄마는 산업역군이 되었다. 그 말은 엄마가 이른 아침 도시락을 싸서 영순엄마와 함께 방직공장에 간다는 뜻이다. 삼 남매의 도시락에 더해 엄마의 도시락까지. 그러니 엄마의 아침은 늘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삶에 대해 엄마는 오로지 근면함으로 일관했고 돈벌이가 될 만한 부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부엌에서 수돗가로, 수돗가에서 시장으로, 다시 공장으로. 엄마는 조용하고 유순했으며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많았다. 언성을 높이는 일도 많지 않았는데 그것이 엄마의 본래 성격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기에 눌려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꽃보다는 감자나 고구마 같은 작물에 가까운 여자였다. 작은 키와 무표정한 얼굴. 물을 주지 않아도 제 몸에서 싹을 틔워내는 묵묵함. 그런 특징들 때문인지 엄마에 대한 나의 감정은 포근한 사랑이라기보다 무심한 편안함이었다. 그녀는 집안에 넓게 퍼져있는 소리 없는 존재로 자신의 세계를 존속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엄마가 다니는 방직공장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에 정류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우리 마을의 마지막 경계선을 암암리에 표시하는 장소였다.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그곳을 넘어 더 멀리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버스를 타고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가는 것은 여행의 시작이고 그건 특별한 권리처럼 보였다.
엄마가 공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도 버스 탈 기회가 생겼다.
“진짜야? 나도 데려가는 거야?”
“대신 엄마가 일하는 동안 혼자 놀고 있어야 돼.”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내가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며 버스요금을 내지 않았다. 운전수가 말했다.
“아줌마 정말이에요? 너 몇 살이냐?”
“일곱살이요.”
다행히 나는 키가 작았다.
착착책책. 공장 입구에서부터 베틀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수돗가에 묶인 누렁이와 놀거나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머리 위로 솟아오를수록 시멘트 바닥이 하얗게 시렸다. 금이 간 틈으로 기어들어가는 개미들을 나무 고챙이로 톡톡 밀었다.
“거기 들어가면 죽어. 어둡잖아.”
열어놓은 창문으로 엄마의 파마머리가 어른거렸고 간혹 나를 내다보기도 했지만 곧 사라졌다. 공장 안에서는 군인들의 행진하는 발소리처럼 베틀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착착책책, 착착책책.
점심때가 되어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그녀들은 씩씩하고 단순하고 웃음이 많았다.
“김씨가 내 엉덩이을 슬쩍슬쩍 만지지 뭐야. 미친 놈.”
“늘어선 게 온통 궁뎅이 뿐인데 누구 궁뎅인 줄 알기나 하겠어.”
그녀들은 손으로 김치를 찢어 먹으며 왁자하게 웃었다. 나는 가끔 궁금했다. 내가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과 현실의 여자는 왜 이렇게 다를까 하고. 종이인형은 드레스를 입거나 예쁜 모자를 쓰고 사뿐히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이 여자들은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다. 같은 점이 있다면 내게는 둘 다 납작하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모두 납작하게 눌려서 사는 것 같았다. 그녀들에게는 내면이란 게, 풍성하고 섬세한 내면이 없는 줄 알았던 것이다. 나는 내면이야 말로 인간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진정한 혈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어 다시 버스를 탔다. 어스름한 차창 밖으로 나무들이 휙휙 지나갔다. 나는 배가 고프고 졸렸지만, 잠든 사이 집에 당도하면 속상할 것 같아 애써 졸음을 참았다. 차창에 기대 졸고 있는 엄마에게서는 기름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내 몸을 지긋이 누르는 엄마의 가슴과 따뜻한 허벅지가 좋았다. 이 모든 감각들은 삶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상한 서글픔 또한 일으켰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다리 가까이에 이르렀고 간간이 켜진 불빛 말고는 마을은 온통 어둠 속에 싸여있었다. 빈약한 불빛의 마을. 나는 처음으로 외부에서 우리 마을을 바라보며 그 넓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에는 좀 더 큰 동그라미가 생겼고 그것은 지난 기억을 바라보는 지금의 의식과 닮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동그라미가 점점 커지는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서글프고 다정한, 경이롭고 초라한 세상. 그 속에서 나는 자라고 있었다.